신학 노트/교리 입문

하나님의 말씀

이원범 2026. 2. 9. 14:0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 따라서 인간 저자의 책과 근본부터 다르고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신학은 오로지 성경으로부터 나온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 무오하고 궁극적인 권위를 제공한다. 이 장의 주요 주제는 계시, 성경의 영감성, 성경의 정경성, 성경의 해석이다.

계시

계시란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유한하고 하나님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무능하기 때문이다. 수준이 낮고 미흡한 지식밖에 가지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의 인식 범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계시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살필 내용은 일반 계시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통해 자신을 증언하시는 것이다. 이 증거는 누구에게나 구별함 없이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자연현상. 그분은 자연 만물과 그 현상들을 통해 그 영광을 드러내신다(시 19:1).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정교하게 맞물린 피조 세계는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된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와 악함을 자인하는 형국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 민속 설화에 나타난 권선징악처럼, 사람들은 대체로 악한 자들이 징벌받는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이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습득한 경험적 지식으로, 하나님께서 악인과 악을 행하는 나라에 전쟁·천재지변·질병·경제적 고난 등으로 심판하신 결과가 축적된 것이다. 부패한 나라와 지도자는 오래가지 못하고 멸망함을 역사가 증명한다.

마음의 구조.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근거이며 죄에 반하는 양심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죄로 인해 본성이 오염되었어도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일반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하므로 피조물 모두가 알 수 있다. 다만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지하는 데에 무리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방도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좀 더 자세하게 계시하실 때, 특별 계시를 사용하신다. 특별 계시는 일반 계시를 통해 얻을 수 없는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준다.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이시지만 사람들에게 종종 자신을 직접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직접 대화하셨고 모세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셨으며 아브라함을 만나주셨다.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시내산 위에 좌정하셨으며 광야를 지날 때 함께하셨다.

예언. 하나님은 보이도록 나타나실 뿐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이다. 옛적에 아브라함과 언약하셨고,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으며, 죄짓는 이스라엘을 향해 돌아오라 애타게 외치셨다. 다니엘과 에스겔처럼 꿈이나 환상으로 말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기적. 자연법칙을 넘어선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의 표적이다. 우상숭배와 배교가 만연하던 시대에 하나님은 능력의 종들을 보내서 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시기에는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들이 치유되어, 이것으로 표징을 삼게 하셨다.

특별 계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미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계시의 궁극적 역사다. 당시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사 53:2; 요 1:9~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다른 어떤 계시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을 계시하셨다(요 1:18; 14:9~10; 골 1:15; 히 1:3).

특별 계시는 영적 은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은사를 소유했던 것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갈 때 더 확연히 발현된다. 성경 저자들은 놀라운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도 이 복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한다. 우선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가로막힌 담이 무너져야 한다. 더러운 죄가 많은 상태에서는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영적 은사도 통로가 막혀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 회개하고 깨끗해져야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복을 누린다.

성경의 영감성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성경이 성령으로부터 영감받은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영감(inspiration)이라는 말은 '숨을 불어넣다'는 뜻을 가지며, 신학적으로는 성령의 감독하심을 의미한다. 비록 저자들이 글을 기록한 방식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바가 오류 없이 전해지도록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하신 것이다. 성경의 영감 과정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기계적 영감설. 하나님께서 기자에게 써야 할 단어까지 정확하게 알게 해 주셨다고 보는 견해다. 영감 과정에서 그는 알려 주신 단어들을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되었다. 이 경우에 기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펜처럼 사용하신 도구일 뿐이었다.

부분 영감설 또는 개념 영감설. 기자가 전체적인 개념이나 인상을 받아 그것을 자신의 단어로 기록했다고 보는 견해다.

본성 영감설. 기자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영감받아서 글을 썼다고 보는 견해다. 재능 있는 작곡가들이나 저술가들이 영감으로 명작을 창작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성경 기자들도 본성적인 어떤 감동을 따라 글을 썼다는 것이다.

축자적 완전 영감설. 성경의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축자적'이라는 말은 단어와 문법에 성령이 감동하셨다는 의미이며, '완전'이라는 말은 로마서와 같이 교리를 다루는 글뿐 아니라 창세기처럼 역사를 다룬 글까지 성경에 나오는 글의 모든 부분과 종류가 그런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성경이 기록된 과정은 다양하다. 저자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방법과 저자의 저술 방식이 제각각이었다. 베드로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했다(벧후 1:20). 이 말은 성경 본문의 의미가 인간 저자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기록된 것은 사람의 뜻이나 혼자의 노력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기록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하나님이 도구로 선택한 저자에게 직접 영향을 주어 그 글을 쓰게 하신 것이다.

성경의 영감에 대해 반대하는 자들은 영감의 오류 가능성에 집중한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정한다. 하지만 성경에는 영감의 증거가 충분히 나타나 있으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자증한다.

1) 하나님께서 기록을 지시하셨다(출 17:14, 34:27; 민 33:2; 사 8:1; 렘 25:13 합 2:2).

2) 예수님께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셨다(마 4:4, 22:43; 요 10:35).

3) 기자들이 성경의 영감을 인정하였다(행 1:16; 딤후 3:16; 벧후 1:2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인간 저자에게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원천적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자의 생각이다. 성경을 인간이 쓴 글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명백히 이단이다. 말을 어떻게 포장하고 그럴듯한 가설을 내세우든 간에, 공허한 외침이며 불신자의 논리에 불과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영적인 신비함 가운데 인간에게 영적 세계를 가르쳐 주시려고 기록하신 말씀이다.

성경의 정경성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으로 구성되며, 기원전 1446년경부터 기원후 95년경까지 1,500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록자로 쓰임 받았으나 궁극적인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각 권의 책이 어떻게 성경으로 선정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정경'이라는 용어는 헬라어 '카논'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막대기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흔히 어떤 것을 재는 도구였다. 이 단어는 '표준', '기준'이라는 개념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후 교회가 권위를 인정한 책들의 목록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성경적 견해에서 정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지닌 글의 모음집이다. 정경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 책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사람의 결정을 수반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교회가 책에 권위를 부여하는데, 이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어느 책이 권위를 가졌는지 결정하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니다. 권위는 책에 내재해 있다. 사람은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영감성을 인정할 뿐이다. 성경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선지자나 사도 등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의 기록이어야 한다. 혹은 그에 준하는 사람이 기록한 책이어야 한다.

2) 내용에 있어서 다른 성경에 배치되지 않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이 공통된 의견을 나타내야 한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동일한 감동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인정하는 구약성경은 정통 유대교에서 확정한 정경 목록이다. 신약성경도 동일한 과정을 밟았다. 교회 지도자들은 구약과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신약 27권의 책을 인정하였다. 신약의 책 역시 구약이 지닌 것과 같은 영감과 권위를 가진 것으로 믿었다.

성경의 해석

성경 해석에는 세심한 주의와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성경 해석의 바른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기본 원리로 삼는다. 애매한 부분은 다른 부분에서 명확해진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의 한 본문을 다른 본문과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구절은 직접 접해 있는 문맥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문맥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2) 유일하게 합법적이고 정당한 성경 해석 방법은 문자적 해석 방법이다. 문자적 해석이란 성경을 적혀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성경을 기록할 때 사용되는 모든 어형을 일상적인 규칙을 따라 해석한다는 뜻이다. 명사는 명사로 동사는 동사로 다룬다. 시는 시로 다룬다. 역사적 기사 역시 역사적 사건으로 다룬다. 비유는 비유로, 과장법을 사용한 부분은 과장된 사실 그대로 다룬다.

3) 우리 자신의 욕망이나 선입관에 따라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며, 자신의 견해로 보려는 마음을 억제해야 한다. 그릇된 교리를 성경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이단이 하는 짓이다.

4)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자기 생각에 따른 섣부른 판단은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참고할 수 있는 서적이 많더라도 본바탕은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쓴 책이 너무 지식으로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정신적 충족감을 줄 수 있지만, 영혼을 살게 하지는 못한다. 성경은 지식을 쌓으라고 주신 책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으라고 주신 책이다.

성경의 기본 진리는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지만, 심오한 부분은 깊은 영성이 있어야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아는 것이 좀 더 깊은 비밀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정말 엄청난 비밀이 있다.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행하신 일과 큰 비밀을 어떻게 한 책에 담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자신과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더 깊은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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