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저마다 특정한 죄에 얽매여 있고, 혹여 이 문제로 구원을 못 받을까 염려한다. 질문을 하는 사람 중에 진짜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 경우는 논외로 삼겠다. 먼저 전제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비참하게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죄를 짓고 산다. 법적·윤리적 죄만 따진다면 간혹 흠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법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인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다(삼상 16:7). 악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생각과 동기까지 죄로 여기시는 분 앞에서 모든 인간은 무죄하다고 할 수 없고 한시라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신자든 비신자든, 이 점에서는 모두 동일한 상황이다. 단언하지만 거듭남은 이 점에서 아무런 차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반드시 이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를 짓고 산다. 따라서 구원을 판가름하는 것은 계속 죄를 짓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나온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죄의 내용이다. 성경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나온다(막 3:28~29; 눅 12:10).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고서 구원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신학은 위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답을 내놓는다.
첫 번째, 칼빈주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참으로 거듭난 신자는 최종적으로 구원을 잃지 않는다(요 10:28). 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를 붙드시고 끝까지 지키심으로 인함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죄 가운데 회개 없이 머무는 자는 처음부터 참 신자가 아니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알미니안 입장에서는, 신자가 자유의지로 믿음을 버리고 지속적인 죄 가운데 머문다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말한다(히 6:4~6; 벧후 2:20~22).
두 입장은 서로 다른 답을 내지만 어느 것은 옳고, 어느 것은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둘 다 성경을 근거로 나온 신학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확실히 보장됨과 더불어 상실 가능성을 내비친다. 우리는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기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상충하는 점에서 혼란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함에 있어서 명백히 한계가 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종합하여 결론을 맺으면, 신자는 연약함으로 인해 삶에서 죄를 반복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므로 죄 가운데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죄와 싸운다. 만일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그 이유는 죄를 심하게 많이 지은 탓이 아니라, 죄를 사랑하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살아서이다(마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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