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노트/교리 입문

내재하는 죄: 서론

이원범 2025. 11. 10. 22:19

첫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오고, 후대 인간들은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죄는 본성을 더럽히는 오염이자 계속 죄를 짓게 만드는 강력한 동인이다. 마치 자가증식하는 세균처럼 자신과 같은 것을 계속 늘리기 위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역사한다. 죄는 하나의 원리이자 경향성으로 신자의 내면에서 역사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거스르게 하고, 사로잡아 포로로 만든다. 현재 많은 교회가 죄의 역사로 인해 포로로 잡혀있다. 주의 종과 신자가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결과다. 죄를 주시하며 깨어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가 유혹에 맞서 싸우려면 죄가 마음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 원리와 방식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신자와 죄의 대결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은 허름하고 남루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그의 등에는 매우 무거워 보이는 짐이 있다. 그 짐이 상징하는 것은 그가 과거로부터 지은 죄이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짐이 보이지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자와 비신자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이다. 예외적으로 중생하지 않은 신자는 비신자와 다름없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내재하는 죄는 인간의 이해나 지각을 뛰어넘는 차원의 것이기에 은혜가 없이는 결코 보지 못한다. 따라서 비신자는 악한 일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을 뿐더러 죄에 친화적이다. 죄가 이끄는 것을 마음이 기뻐하고 동조한다. 그러므로 비신자는 죄와 대결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저 죄의 노예로 충실히 복종할 따름이다. 반면에 신자는 죄를 알고 죄와 대적하여 싸운다. 그에게는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죄를 대적할 힘을 주신다. 신자는 이 땅에서 대결을 피할 길이 없다. 지속적인 투쟁과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완전한 상태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이루어진다. 죄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지만 실효적인 힘을 갖고 있어 신자 안에서 지성을 속이고 정서를 부추기며 선한 의지를 꺾어 죄를 산출한다. 바울은 인간의 마음에서 역사하는 이것을 일러 법이라 칭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신자와 죄의 대결은 필연적이다. 중생한 신자는 죄와 순종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다. 은혜는 죄를 억제하고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지만, 죄는 신자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대적하는 원리로 그를 압박한다. 그로 인해 신자는 마주하는 죄의 시험 앞에서 고민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선다. 이는 신자의 불안정하고 과도기적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최초의 대적 관계

신자와 죄의 대결은 에덴동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고 단지 전해 들었을 뿐인데도 이 사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여기서 뱀이 죄의 근원적 상징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정황이 드러난다.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죄의 원흉이자 죄의 주역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죄는 이때부터 인간에게 선공을 가했다. 유혹을 통해서 말이다. 죄는 유혹자다. 그것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유혹자다.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인간이 그에게 유혹을 받았다. 그의 악함과 계획의 치밀함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본질상 드러난 면모가 처음 인간을 유혹한 뱀과 같다. 성경은 이에 대해 매우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다시 정리하면, 신자와 죄의 반목은 창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은 뱀의 간교한 꾀로 인해 최고의 자리에서 쫓겨났고, 뱀은 저주와 심판을 선고받고 인간의 최대 원수가 되었다. 이때 형성한 적대 관계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유효하다. 후대 인간들은 뱀처럼 간사한 죄와 싸워야 하며,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발꿈치는 물론 온몸이 상한다.

거대한 군대

죄의 힘과 권능을 상징화해서 표현하면 거대한 군대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 그 군대는 지옥의 망자들로 이루어졌다. 무기로 강하게 쳐서 뼈를 분쇄하고 흩어도 사악한 힘으로 재생하여 멀쩡히 되살아난다. 이들은 불사의 거대한 세력이다. 인간 사회는 해처럼 뜨고 지기를 반복했지만, 죄의 군대는 종말을 맞이한 적이 없고, 한 번의 휴식기를 가진 적이 없다. 세월이 흘러도 죄의 계획은 바래지 않았고 악이 조금도 희석되지 않았다. 죄는 한결같이 유혹을 공격 수단으로 활용해 왔고, 지금은 대중 매체의 발달로 더욱 교묘하고 깊숙이 인간 삶에 파고들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죄는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무기로 신자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중은 본래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어 학대하고 조롱한다. 사로잡힌 자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다른 신자들을 공격하는 일에 이용된다. 죄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미 전황이 죄의 편으로 기울었음을 인식하고 각성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우선 죄가 다 사해졌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신자는 죄에 눈을 떠서 실상을 보게 된 사람이다. 비로소 싸움을 시작했을 뿐이다. 마치 싸움이 종결된 것으로 여긴다면 반드시 패하는 길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잔은 우리가 영원히 감당해야 할 죄책에 해당한다. 그리고 속죄의 피로써 용서의 근거를 마련해 주셨다. 그러니 용서를 과거형으로 생각하면 틀린 것이고 진행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죄가 사해졌으면 타락 전 아담과 하와처럼 오염이 없어야 하는데, 주님을 믿어도 우리에게는 오염이 남아있다. 오염이 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