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초판) 27강 세례에 관하여

이원범 2021. 11. 5. 22:18

세례는 개신교에서 인정하는 성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처음에는 회개한 사람을 대상으로 죄 사함의 표로서 주어졌고, 그 이후로 전통처럼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군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처럼, 더러운 죄와의 싸움을 수행한 성도에게 죄가 사하여졌음을 알리는 의식입니다. 정의하면 세례란 죄를 씻어 정결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입니다.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부연하자면 세례 자체의 효능으로 우리가 정결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훈장과 같아서 그저 증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죄 사함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실제로 죄를 용서받아 깨끗해진 사람에게 세례가 그 사실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간혹 세례가 신비한 능력으로 지난날의 모든 죄를 말소시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관점에서 그들은 거의 죽어갈 무렵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살아생전의 모든 죄가 사해지니 말입니다. 세례의 의미를 모르고 잘못된 사실을 맹신한 어리석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례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도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를 외쳤습니다. 주님께서도 회개하라 명령하셨습니다.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는 회개를 해야 사해집니다. 그리고 사해진 후에 죄 사함의 증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세례의 자격을 논할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지가 아닙니다. 회개를 도와서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하고 변화된 삶이 나타날 때 세례를 주는 것이 온당합니다.

장로교는 보통 물을 찍어 바르는 형식으로 세례를 행합니다. 침례교는 몸을 완전히 잠그고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동일하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세례입니다. 그런데 침례가 더 확실히 의미가 와닿습니다. 온몸이 물에 씻어지고 또 물에 들어감은 죽음을, 물에서 나옴은 살아남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부활을 피부로 와닿게 보여줍니다.

세례의 가치는 거듭 죄에 빠져 지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다시 새 힘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면을 빌미로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나 그렇다고 자기 비하와 절망으로 치달아도 안 됩니다. 인간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끝도 없이 실수하고 자빠질 수 있습니다. 자괴감이 들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야 합니다. 구제 불능의 죄인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내가 정말 쓸모없는 죄인 같아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