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논하려는 내용은 내재하는 죄로부터 발견되는 몇 가지 속성이다. 신자가 죄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사전에 그것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죄와 싸우는 사람들은 거의 알 만한 내용이지만, 앞으로 죄의 역사와 그 과정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미리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적의
죄에서 드러나는 속성은 적의다. 곧 모든 대상에 대한 적의를 일으킨다. 강도, 사기꾼, 독재자, 테러리스트에게서 이것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 가인에게 동생을 살해할 의지를 넣었다. 하나님께서 예물을 받지 않으신 것은 자기에게 책임이 있음에도,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을 미워하게 하고 터무니없는 악을 저지르게 했다.
성경을 살펴보면 수많은 죄의 역사가 보인다. 사울은 충성스러운 일꾼 다윗을 죽이려 했고, 돈궤를 맡은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30에 팔았다. 이처럼 죄는 다른 이를 미워하게 만들고, 배척하고, 죽인다. 신자 안에서 영혼과 은혜의 원리를 대적하는 뜻을 갖고 있어서, 영혼을 파멸시키는 일을 행한다.
한편으로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적의요 반감이다. 앞서 이야기한 죄가 대적하는 모든 대상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기 위한 부가적 목표일 뿐, 죄의 궁극적 공격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래서 죄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한다. 예수님 당시 핍박자들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조롱했다. 주께서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일에 대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행한 것이라는 망언을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 줄 몰랐을 수 있지만, 내재하는 죄는 그 진실을 알고 있었다. 명백히 알고서 행한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바울은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육신의 생각은 내재하는 죄가 일으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이것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전한다. 죄는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을 대적할 뿐 달리 행동하지 않는다. 존재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죄의 속성은 하나님에 대한 적의다. 죄는 신자 안에서 성령님의 은혜의 원리를 정복하려고 싸운다.
어둠 속에 거한다
법이 효력을 미치지 않고, 범죄나 불법 행위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을 암흑가, 음지, 뒷세계라 부른다. 이런 어둡고 음습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그들도 어둡고 음습하기 때문이다. 악한 자들은 법과 밝음을 피해서 어둠 속에 숨는다. 그 무리를 이끄는 자를 '암흑가의 보스'라고 하는데 죄가 바로 암흑가의 보스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로 똘똘 뭉친 죄는 빛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어둠 속에 숨어 음습한 계획을 세우고 반역 행위를 진행한다. 그런 죄가 거처로 삼은 곳이 인간의 마음이다. 마음은 어두운 속성을 가진 죄가 들어옴으로 인해 심히 어두워지고 말았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의 일반적 성향과 성격에 대해서 정확히 모른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궁리와 움직임, 반응과 반감에 대해 무지하고, 이것이 죄의 역사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마음에서 그의 성향을 따라 역사하는 죄는 들키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은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본성으로 여길 것이다. 따라서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충실한 일꾼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죄가 사람을 다루는 일에 매우 능숙함을 보여준다. 죄는 내면에 존재하는 이점을 이용해 각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망과 감정에 부합하면서 가장 파괴적인 수단을 고려한다. 인간이 꼬임에 속아 죄를 산출하면 그것은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춘다. 현장에 홀로 남은 그는 후회와 좌절을 맛봐야 한다. 죄가 헤아릴 수 없는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다가 숨어 버리면 더 이상 죄를 추적할 수 없다. 죄가 마음의 어둠 속에 은둔하고 있는 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가 어두워진 지성 속에, 무기력한 의지 속에, 혼란스럽고 육욕적인 감정 속에 깊이 숨어 버리면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어둠에 속한 죄는 오직 빛으로만 대적할 수 있다.
항구적이다
죄의 계획과 속성은 항구적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신자의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죄의 계획과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시작부터 현재까지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 변함이 없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은 죄의 항구적 속성을 말해준다. 회개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에는 죄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 배우지 않아도 악에 익숙하고, 선을 행하려야 행할 능력이 없다. 이 틀을 깨기 위해서는 다른 수단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죄가 그 성질을 변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죄가 적의라는 본성을 버려야 할 것인데, 천지가 변해도 죄가 변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죄의 항구적 속성은 원수와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리라는 기대를 무너뜨린다. 신자의 살아생전 죄가 패하고 전쟁이 그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신자는 날마다 원수를 대적하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운명이다.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전과는 죄를 약화시켜 크게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면 죄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그럴지라도 성질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자란다
죄는 저항하거나 억제하지 않는 이상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죄와 싸우기를 그치면, 그것은 영혼을 정복하고 파괴한다. 긴 싸움을 싸우다 보면 육체는 지치고 고단하여 잠시 싸움을 유예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런데 죄에게 쉴 시간을 주는 것은 그것이 먹고 자라는 데 필요한 요소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죄는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성장기 아이처럼 금세 자란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죄를 먹고 자란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자라듯이 내재하는 죄도 자란다. 마음에서 시작된 죄의 싹은 실행된 범죄를 통해 자라며, 죄의 경향성을 더욱 강화한다. 그 경향성에 맹렬함과 광기와 무모함을 더해 주고, 죄책감을 덜어 준다. 실행된 죄는 더욱 그의 마음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마음의 토양을 딱딱하게 굳게 만든다. 죄가 성장하는 속도는 환경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으나, 신앙의 자세에 영향을 받고 결정적으로 죄짓는 양에 크게 좌우된다. 첫 번째로 생각이 부패한 곳에서 죄는 빠르게 자란다.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지성은 영혼의 주도적 기능이고, 의지와 정서는 지성이 결정하는 것을 따라가고, 생각이 제시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혼의 모든 기능과 관련하여 생각이 영혼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막중하다. 생각의 역할은 인도하고, 지시하고, 선택하며, 이끄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가 적고 죄의 낙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빠르게 자란다. 인류의 죄악은 창조 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장성하게 되었다.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의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죄는 죄를 먹고 자라 흥왕하게 된다. 장성한 죄는 무수히 범하는 죄의 근거가 되며, 강력한 힘으로 신자를 지배한다. 신자가 반격하고 싸우기를 주저하면, 그들은 거대한 괴물로 자라나 삶 가운데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죄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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