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사도.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에서 가져온 단어다. 권한을 부여받은 대표자 혹은 특사를 가리킨다(고후 8:23).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보낸 자의 권위를 그대로 반영한다. 다시 말해 가르치며 전하고 고치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그리스도와 같은 권위를 지닌다.
10:4 가나나인 시몬. 독립운동가 집단의 당원이었다. 요세푸스의 말에 의하면, 가나나인(열심당)들은 종교적 열정을 가진 정치 집단으로서 로마 체제에 대해 무력으로 맞설 것을 주창했다. 그런 시몬이 친로마적 성향을 가진 마태나 다른 제자들과 섞이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를 만남으로 가능하였다.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문을 품은 가룟 유다는 사탄의 꾐에 넘어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말았다. 인간이 하나님의 대적자로 전락하는 까닭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지 않는 교만과 고집 때문이다.
10:5~11:1 '제자 파송'에 관한 이 가르침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두 번째 교훈에 해당한다.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앞으로 마주할 상황에 대해 미리 깨닫고 대처하기를 바래서라고 볼 수 있다. 사명자의 길에 선 제자들은 그리스도로 인해 핍박받을 것이며 수고와 희생이 뒤따를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충분히 감당하리라 믿으며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조언하시고 또 격려하신다.
10:5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오래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며 충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드러낸다(창 12:2, 17:7, 8). 약속하신 복은 모든 이방 세계로 확산될 것인데 우선권은 아브라함의 유전적 후손, 즉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있다(15:24).
10:7, 8 전파하여 . . . 고치며 . . . 살리며. 보내신 분의 권한이 이들과 함께하여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능력의 나타남은 보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10:8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금전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이슈다. 대부분 갈릴리 출신인 제자들은 서민인 경우가 많고, 비용 마련에 대한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주님의 명령은 왠지 야속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세상의 원리와 다른 헌신과 섬김을 가르치시는 것으로 보인다. 천국 복음은 비즈니스를 위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익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행 8:20; 고전 9:18). 굳이 따진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녔으며 아무도 제값을 주고 살 수 없다. 주님 나라의 일꾼은 본인이 재정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시 23:1).
10:14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방 지역을 다녀오고 나서 부정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었는데, 예수님께선 이것을 심판의 사인으로 사용하신다. 제자들을 거부하는 것은 보내신 이를 거부하는 것과 같으므로 과거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의 대상이 된다(행 13:51).
10:17~20 여기서는 당면한 과제뿐 아니라 이방으로 확장된 선교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제시한다. 핍박은 같은 민족에서 시작되며 이후에 이방인과 권세자들까지 합세하여 일어설 것이다. 만약 이것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면, 무엇으로 변론할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성령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변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행 4:8).
10:22 모든 사람. 그리스도인에 대한 증오가 극심해지는 종말론적 환난의 때를 암시한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핍박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노력이나 잔꾀는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발상이 아니다. 이러한 때 편안한 삶을 추구한다면 미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계 13:16). 핍박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고 약속된 복을 누린다(딤후 2:12).
10:23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해석하기 까다로운 난제로서 학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이 대목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더 부연하여 설명하셨을 것이다. 재림에 관한 어떤 힌트가 숨겨져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10:25 바알세불. '귀신의 왕', 즉 '사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자들은 예수께서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모함했다(12:24~27).
10:26~31 핍박에 이어서 이번에는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내용이다. 주님께서 권고하시는 바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맞서 대적하라고 하지 않으시는데,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엡 6:12). 두려워하지 않음은 적극적인 대응은 아니지만 비굴하거나 약하게 보이지 않는다. 약할지라도 겁내지 않으면 상대는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10:28 지옥. 5:22 해설 참조.
10:35 사람이 그 아버지와 . . . 불화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이 싸움을 부추긴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가족 간의 불화는 그저 신앙관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이지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 없다. 온 가족이 신앙 안에 하나되면, 그곳은 지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 처지라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 가족 구원은 대개 성도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과제 중 하나다(행 16:31).
10:38 자기 십자가를 지고. 소가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끄는 것처럼, 각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있다. 이는 주님께서 부과하신 과업이며(11:29), 사람마다 무게가 다르고 형태도 천차만별이다. 이것을 지고서 묵묵히 참고 견디는 사람은 참다운 신앙과 믿음을 삶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10:41 선지자 . . . 의인. 보냄을 받은 자를 영접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앞 절의 원리를 다시 반복한다. 사명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사인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10:42 작은 자. 실제 나이가 어리거나 영적 나이가 어린 경우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사정이 어려워서 도움을 입어도 보답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베푼 선은 왕께 베푼 것과 동일시되어 마땅히 좋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25:3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