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르 주석

마태복음 12

이원범 2024. 3. 2. 17:30

12:2 not lawful. 바리새인들이 제기한 문제는 율법에 관련된 내용이 아닌 장로들의 전통(미쉬나)에 근거한 것이다. 오히려 율법은 배고프고 가난한 자의 편을 들어주는 규정을 포함한다(레 19:9, 10; 신 23:24, 25). 이삭을 잘라 먹는 행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과하며 결코 트집 잡을 만한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만약 지혜가 있었다면(11:25), 진리에서 이렇게 엇나간 뜻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Sabbath.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쉬신 날에서 유래한다(창 2:1~3).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이날을 거룩한 날로 지키라는 명령이 들어있다(출 16:23). 히브리 법전인 미쉬나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39가지의 일을 열거한다.

12:3~6 바리새인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예수님은 과거의 사례를 인용하여 제자들을 변호하신다(삼상 21:1~6). 안식일의 초점은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막 2:27), 중요성에 있어서 사람의 생명과 견줄 수 없다. 같은 원리로서 제사장들 외에는 먹지 못한다는 진설병 규례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사람에게 온당치 않다.

12:6 something greater than the temple. 율법에 관한 논증이 그리스도의 자기계시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성전은 성육신하신 주님의 상징으로서 참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요 1:14, 2:21). 이러한 발언은 율법을 제정하시고 수여하신 분의 권위로 인해 다른 변론보다 강하고 확실한 명분을 지닌다.

12:7 I desire mercy. 그동안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시켜 가르친 일에 대해서 크게 혼나야 마땅하다. 그들은 예배라는 가치에 충실했는지 몰라도 더 소중히 여길 것을 경시했다. 예수님은 호 6:6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간결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가르치신다.

12:8 lord of the Sabbath. 종들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침내 결정적 계시가 주어진다. 여태 그들이 받았던 불쾌감은 주님을 일반인 범주에 넣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만약 예수께서 절대적 권위를 지니신 하나님임을 깨달았다면 이야기는 180도로 달랐을 것이다(요 4:10). 주권자이신 분께 항의한다거나 요구를 들이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12:9~14 안식일에 관한 다른 예로, 이번에도 역시 바리새인들이 트집 잡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회당 안에서 시험하는 발언을 낸 것은 회중의 눈과 귀를 이용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근본 원리인 생명과 회복을 내세워, 계승되어 온 규정의 문제점을 수정하신다.

12:16~21 ordered them not to make him known. 적대 세력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신 발언으로 보인다. 대개 사람들은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빼거나 더하여 사실을 왜곡시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니라도 제자들이 그 소임을 감당할 것이다. 이 단락에 포함된 사 42:1~4은 메시아의 온유하신 품성에 관한 묘사다. 이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이며, 유대인들이 간절히 소망해 온 제왕적 메시아와는 괴리가 크다(요 6:15).

12:24 Beelzebul. 10:25 해설 참조.

12:25 knowing their thoughts. 놀라운 능력이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기름부음 받으신 이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나의 관한 비밀한 일을 전부 아시는 분이다(요 2:24, 25).

12:29 binds the strong man. 여기서 '강한 자'는 하나님의 대적자 마귀와 그의 수하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해 완전히 쫓겨날 처지에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질 것이다. 한번 시작된 싸움은 금방 끝나지 않으며, 결박하고 무찌르는 작업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

12:31, 32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중죄에 해당한다. 죽기 살기로 회개하면 모를까 왠만해서는 용서가 안 되는 악질적인 죄다. 만약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랬다면 정상 참작이 될 수 있겠다(딤전 1:13~16).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충분히 알만한 사람이고 고의성이 짙기 때문에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12:33~35 입에서 나온 말은 사실상 중심부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밝히신다. 은유적으로 그들은 악한 나무이기에 악한 열매를 내는 것이다. 이 지적은 본성적으로 더럽혀진 그들의 심령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며 회개를 위한 촉구다.

12:36, 37 앞선 지적에서처럼, 말은 사람의 심령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판결 과정에 들어갈 필수 자료가 된다. 또한 말 그 자체가 중대한 죄로 여겨지기도 한다(5:22; 고후 12:20; 딤전 1:10; 약 3:6; 계 21:8).

12:38 sign. 이미 여러 차례 주어졌지만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시 표적을 구하는 모습은 조롱의 의미로 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무익한 요구에 응하실 정도로 주님께서 한가한 분이 아니다. 장차 이들에게 마지막 사인이 주어질 것인데, 그다지 효용을 기대할 수 없다(28:11~15).

12:39 sign of . . . Jonah. 불경건한 세대에게 표적은 사치며 낭비에 불과하다. 그래도 요나의 표적, 곧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는 기적을 마지막으로 볼 것이다. 이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길 바라시는 주님의 뜻으로(벧후 3:9), 이때만큼은 고집을 전부 내려놔야 한다. 마치 요나의 마지막 경고처럼 그들에게 이 표적은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12:40 three days and three nights. '3일'을 강조해서 표현하는 말이다.

12:42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남방 여왕은 성육신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 세대와 대비를 이룬다.

12:43~45 주님의 권능으로 귀신이 쫓겨나는 것은 즐겁고 기쁨이 넘치는 기적이다. 그러나 그냥 기뻐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언제든 그것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요 5:14). 이를테면 치유 사역에서 축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할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는 오로지 회개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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