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126장 담대하거라

이원범 2021. 6. 28. 11:58

  루시아는 대제사장들과 공회 의원들이 바울과 직접 대면하도록 회동을 주선했다. 양측의 주장을 모두 들어 보면 소동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회장 안에는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처럼 긴장이 감돌았다. 먼저 바울에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가 회장 내에 의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줄곧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때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격분하여 소리쳤다.

  “저놈의 입을 쳐라!”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율법대로 나를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그러자 측근들이 들고 일어서며, 그에게 힐책했다.

  “무엄하다. 이분은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시다!”

  “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말이 옳습니다. 성경에도 백성의 통치자를 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회장 안은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져 이야기를 길게 해 봐야 논쟁만 더욱 거세질 뿐 아무 열매도 얻지 못할 것이란 사실이 자명하였다. 바울은 의회의 일부가 사두개파, 다른 일부는 바리새파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묘수를 떠올렸다.

  “형제 여러분, 저는 대대로 바리새인 집안에서 태어난 충실한 바리새인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다름이 아닌 죽은 사람의 소망 곧 부활에 대한 신념 때문입니다.”

  그의 변론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이에 갈등을 불러왔다. 부활은 두 계파 간에 타협이 불가능한 오랜 난제 가운데 하나로,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믿었지만 사두개인들은 부인하였다. 공회는 바울의 사상을 검증하는 모임에서 부활에 관한 논의로 변하여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경비대장은 두 계파의 격렬한 논쟁 가운데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도리어 그칠 줄 모르는 논쟁 사이에서 바울이 치이다가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를 빼내어 다시 병영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내 종 바울아.”

  “예, 주님.”

  “너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담대하거라.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그리하여야 하리라.”

  “주여, 말씀대로 이루소서.”

  며칠 후, 바울은 유대 지도자들의 고소로 인해 법정에 소환되어, 총독 벨릭스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극악한 죄나 사회질서에 위해를 가하는 어떤 잘못도 저지른 일이 없기에, 유죄 판결을 면했다. 다만 총독은 유대 권세자들의 뜻에 편승하여 소송건을 마무리 짓지 않고 바울을 계속 옥에 가두어 두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이 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벨릭스가 임기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갔다. 그리고 보르기오 베스도가 새 총독으로 부임했다. 베스도는 중심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고위 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은 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베스도를 찾아와 바울을 고발하였다.

  “총독님, 이 년 전에 옥에 잡아가둔 바울 그자는 우리 법대로 판결받아야 할 자이오니, 저희 예루살렘으로 불러올려 주시기 긴히 청하옵니다.”

  그들은 바울을 범법자로 몰아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여, 이번에는 길에서 매복해 있다가 그를 살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베스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가이사랴에서 공정한 판정을 내릴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 며칠을 더 머무르고 가이사랴로 돌아왔다. 유대 지도자들도 그와 함께 가이사랴에 와서 바울을 고소하였다.

  이튿날 베스도는 재판을 열고 바울을 법정으로 불러내었다. 예루살렘의 고소자들은 여러 가지 무거운 죄목을 걸어서 고발하였으나 증거를 대지 못하였다.

  바울이 고백했다.

  “나는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 대하여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

  “그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재판받고 싶지 않소?”

  재판석에 앉은 베스도는 그리 공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자 바울을 희생시킬 셈이었다.

  “나는 지금 황제의 법정에 서 있습니다. 나는 거기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는 대로 나는 유대 사람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만일 내가 나쁜 짓을 저질러서 사형받을 만한 무슨 일을 하였으면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고발 내용에 아무런 근거가 없으면 누구도 나를 넘겨줄 수 없습니다. 나는 황제에게 상소합니다.”

  바울은 죽음에 넘겨질 수 없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상소를 요청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대가 황제에게 상소하였으니, 황제에게로 갈 것이오.”

  베스도는 배심원들과 의논한 끝에 상소 요청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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