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125장 무리에게 변론하다

이원범 2021. 6. 28. 11:48

  잠시 후 병영에 도착해 들어가서 바울은 그리스 언어로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됩니까?”

  경비대장은 심상치 않은 눈초리로 바울의 얼굴을 주시하였다. 바울이 제국의 공용 언어인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함을 적잖이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그리스 말을 할 줄 아는군. 그럼 한 가지 묻겠소! 얼마 전 여기서 폭동을 일으키고, 추종자들 사천여 명을 데리고 광야로 잠적한 자가 있었지. 주동 인물이 이집트인이었는데, 혹시 당신이 그 사람이오?”

  “아닙니다. 나는 길리기아 다소 태생으로, 유대인이며 그 도시 시민입니다. 그러니 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알았소. 마음대로 하시오.”

  바울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층계 위로 올라갔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무리는 더욱 광분하여 떠들며 소리쳐댔다. 극도로 험악해진 분위기 가운데, 그는 한 손을 들어 그들을 시선을 끌고 친숙한 모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내 아버지요 형제이신 여러분! 나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전에,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무리는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는 모두 조용해졌다.

  “저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이 도시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 들어가 우리 조상의 율법을 철저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께 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도(道)에 관련된 사람이면 박해하여 죽이기까지 하였고,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묶어서 감옥에 넣었습니다. 제 말이 사실인지는 대제사장이나 공회 의원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그들이 잘 알고 있으니, 분명히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러다가, 예수의 추종자들을 추적하고 체포하려고 그들이 있는 다마스쿠스로 떠났습니다. 그때 제겐 다마스쿠스의 유대인 지도자에게 보여줄 공문을 가지고 있었죠. 다마스쿠스 외곽에 이르렀을 때, 정오쯤 될 무렵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저를 둘러 비추어 즉시 쓰러져 바닥에 뒹굴었지요. 그리고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래서 여쭈어보았지요.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하시는 대답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나와 함께 있던 자들은 그 빛은 보았으나, 내가 그분과 나눈 대화는 듣지 못했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그분께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줄 사람이 거기 있노라’ 그래서 저는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지요. 저는 눈이 멀어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동료들의 손을 붙잡고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기로 소문난 사람으로, 이는 다마스쿠스 유대인 공동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그가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눈을 뜨시오’ 하고 말하자, 즉시 내 눈이 회복되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또 그가 하는 말이,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시고, 그분의 뜻을 알리시며, 그 의로우신 분을 보게 하시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당신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그분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일어나 세례를 받으시오. 죄를 깨끗이 씻어 내고, 하나님과 직접 사귀십시오’ 하더군요. 그리고서, 정말 그가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임재 가운데 그분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서둘러 이곳을 떠나라!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 내게 대한 증거를 받아들일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반대했었습니다. ‘주님, 왜 떠나라 하십니까? 저들 중엔 제가 과거에 행한 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는 일에 얼마나 열중했는지 말입니다. 집사 스데반이 죽을 때도, 제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옷을 지키며 그 일에 찬동하였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허락지 않으시며, ‘가라. 나는 너를 멀리 이방인들에게로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이때 무리로부터 욕설과 질타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는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는가 하면 또 돌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경비대장은 현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 수하에게 바울을 채찍질하고 심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형틀에 묶여 매질을 당하게 될 찰나, 바울이 경비대원에게 항변했다.

  “이보시오. 재판도 하기 전에 로마 시민을 고문하다니, 이런 법이 어딨소?”

  수하 장교는 곧장 경비대장에게로 가서 보고했다.

  “대장님! 그 사람 말로는 자기가 로마 시민이랍니다. 어찌할까요?”

  경비대장은 깜짝 놀라며 바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그에게 물었다.

  “로마 시민이라니! 그게 사실입니까?”

  “예, 그렇소.”

  “나는 큰돈을 들여서 시민권을 얻었소만, 당신은 얼마나 들었소?”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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