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124장 성전에서

이원범 2021. 6. 28. 11:37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계속 진행 중에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바울은 로마로 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성령께서 거듭 그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그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자 명령이었다. 다만 그 일은 고난과 희생의 값을 치르고서야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울은 다시 만나지 못할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찾아가 작별을 고하고서, 일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출발했다. 그동안 사선을 넘나들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분투한 바울이지만, 이번 예루살렘행은 다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떠나는 여정이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특히나 모세의 율법에 큰 자부심을 가진 자들로서, 그와 상반된 가르침을 전하는 바울에 대해 몹시 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어디를 가든 분쟁이나 변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다분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하루를 쉬고, 이튿날 교회 감독자 야고보 및 여러 장로들을 만났다. 당시 사도들은 맡은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 있었기에 예루살렘에 남아있지 않았다. 안부와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뒤에 바울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 행하신 영광스러운 일들을 하나씩 풀어 들려주었다. 야고보 및 교회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에 기뻐하고 또 감탄하며 주께 영광을 올려드렸다.

  이내, 그들중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정말 우리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신 분임을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저희도 바울 선생님께 들려드릴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동안 여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 수만 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모세의 율법에 열성적이라 좀 우려스러운 면도 있지요. 들리는 소문엔, 당신이 믿지 않는 이방인들 가운데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고 하면서, 자녀에게 할례를 주지 않아도 되고 옛 전통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이곳에 온 걸, 그들이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곤란한 일이 벌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 말에 일행들은 근심되어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선생님께선 이렇게 하십시오. 저희 쪽에 정결 예식을 하기로 서원하고 돈이 없어서 아직 이행하지 못한 사람 넷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셔서 정결 예식을 행하고 그 비용을 대 주십시오. 그러면 향간에 떠도는 소문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도리어 선생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도 납득할 것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여, 그 네 사람의 서원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비용을 지불해 주었다. 그리고 정결예식이 마치기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며칠 후 정결예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성전에서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에베소 근방에서 온 유대인들 중에 바울의 얼굴을 알아본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힘껏 억눌렀다. 그러고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곧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이 자가 당신 물건이라도 훔쳤소?”

  “겨우 그 정도가 아니오! 이 자는 가는 곳마다 우리 종교와 성전을 거슬러 말하는 사기꾼입니다. 이제는 그리스 사람까지 성전에 데려와 이 곳을 더럽혀 놨소. 아주 몹쓸 인간이오.”

  모인 사람들도 이미 소문은 들어 알고 있던 바, 다들 격분에 휩싸여 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죽여야 합니다!”

  “그렇소! 돌로 쳐도 시원치 않소!”

  “우선 이 자를 밖으로 내보냅시다. 죽이는 건 다음이오!”

  성난 무리는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어내더니 급기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바울의 동료들은 성난 무리에게서 그를 보호하려고 노력했지만, 수적으로 열세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바울은 땅바닥에 내동그러져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그들로부터 수없이 몰매를 당하였다. 그 시각, 로마 경비대장 루시아는 한 병사로부터 도시의 소동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그 소동의 여파로 예루살렘 전체가 들끓고 있다는 보고였다.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신속하게 현장으로 달려갔다. 폭도들은 경비대장과 수하의 병사들을 그곳에 도착한 것을 보고서야 때리기를 멈췄다.

  “저 자를 체포한다!”

  심한 구타를 모면한 바울이 병사들의 손에 붙들렸다. 루시아는 그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이 사람은 누구냐? 무슨 일을 저질러 죽이려 한 것이냐?”

  그러나 성난 무리로부터 되돌아오는 답은 이렇게 저렇게 외치는 고함소리뿐이었다. 그들은 한껏 격앙된 감정으로 인해, 고소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아듣기 쉽게 잘 전달하지 못했다.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한 루시아는 푸념하고, 병사들에게 바울을 병영으로 데려가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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