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초판) 23강 기도

이원범 2021. 10. 29. 17:29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거액의 상금을 놓고 참가자들이 목숨을 건 게임을 한다는 내용인데, 심화하는 사회 불평등이 이야기에 녹아있어 세계인의 공감을 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의하면 이것은 비단 자본주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체제이든 구성원이 인간인 이상 불평등한 요소가 안 생길 수 없습니다. 무엇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자신을 살펴야 함이 마땅합니다. 이 비참한 상황에서 인간이 기대야 할 곳은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소원을 우선시합니다. 타인을 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 욕구에 더욱 충실합니다. 신앙인 중에는 거의 달라는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가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나의 주시요 왕이심을 상기한다면, 사적이며 충동에서 기인한 것이 그분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알 것입니다. 기도는 까다로운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기도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가진 부귀영화의 헛된 꿈을 내려놓고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구하라 하셨다고 정말 쓸데없는 것을 구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실 수 없습니다.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아버지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도록 내 명예와 영광에 대한 욕구를 속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째, 마음을 담은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내용이 올바를 뿐 아니라 마음이 그것과 일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용서를 구한다면, 이것은 진정성 있는 기도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고 공허하게 울리는 꽹과리나 다름없습니다. 기도는 경건함을 과시하고자 혹은 유창한 언변을 자랑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정제된 문장과 아름다운 운율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에서 나온 꾸밈없는 고백이면 충분합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전하려고 하는 말이 기도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약함과 빈곤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라 명령하셨습니다. 내 연약함을 바로 인식하고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간구한 것을 무엇이든 이루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으로 인해 성도들은 어려운 중에 위로를 얻으며 장차 변화될 날의 소망을 갖습니다. 세상이 거칠게 목을 조이며 괴롭혀도 꾸준히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언젠가 건지시는 때가 올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약속하신 바를 믿는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약속을 의심하고 흔들린다면 상을 얻기 어렵습니다.

셋째,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중재자 없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완전한 자격을 갖추려면 그리스도께서 전달자가 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분의 중재로 우리 기도가 효력을 얻습니다. 만약 자기 이름이나 성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그는 반드시 거절당할 것입니다. 인간은 제아무리 의롭다고 하더라도 죄인입니다.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도 인간이며 중재자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난 것이고 효력에서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