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45장 여룹바알

이원범 2021. 6. 23. 08:59

  어느 날 주님께서 오브라에서 사는 기드온에게 찾아오셨다. 그때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얼마 되지 않는 밀을 탈곡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그가 가진 고민만큼이나 무겁고 어두웠다. 그는 약탈자들에게 무력하게 수탈당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에 매우 낙담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강한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그의 말에 반감이 일어난 기드온은 반문하였다.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여호와께서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저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이집트에서 우릴 구해 내실 적에 그 모든 기적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우릴 버리고 미디안의 손에 넘긴 것이 그분 아닙니까?”

  “너는 가서, 네게 있는 그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서 구원하여라. 내가 너를 보내지 않았느냐?”

  “제가 말입니까? 제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 집안은 므낫세 중에서 가장 약하고, 저는 형제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나를 믿어라. 네가 마치 한 사람을 물리치듯이 미디안을 물리칠 것이다.”

  “그 말씀이 진심이라면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말씀하신 것을 뒷받침할 표징을 제게 주십시오. 제가 돌아와 예물을 드릴 때까지 떠나지 마십시오.”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기드온은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염소 새끼를 잡아 요리를 만들고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많이 준비하여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로 다시 갔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고기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가져다가 저 바위 위에 놓고 그 위에 국을 부어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자, 주님께서 들고 계시던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빵에 댔다.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빵을 살라 버렸고, 그 사이에 주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드온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 탄식하였다.

  “내가 주 하나님을 대면하였구나. 이를 어찌하나!”

  주님과의 대면으로 죄를 자각하게 된 기드온은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의 가문은 언제부터인가 이방 신을 섬겼고, 현재 그의 집은 오브라 주민들이 바알과 아세라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찾는 신당과 같은 장소였다. 이러한 죄로 말미암아 곧장 징벌이 임하여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마음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려왔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았으니, 너는 네 아버지 집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그 옆에 있는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려라. 그리고 이 언덕 꼭대기에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라. 너는 네 아버지의 집에서 칠 년 된 가장 좋은 수소, 최상품 수소를 끌고 와서 번제로 드리되, 네가 찍어 낸 아세라 목상을 장작으로 써라.”

  순종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그 명령대로 행한다면 성읍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보지 않을 밤 중에 그 일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밤 기드온은 자기 종을 불러 모아서 아버지 요아스의 신당을 가득 메운 가증한 우상들과 그것을 섬기기 위한 모든 도구를 도끼로 찍어 부서뜨렸다. 그러고 나서 오브라의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제단을 새로 쌓고, 최상품 수소를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 이른 아침, 참배하러 나온 주민들은 일어난 일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건은 오브라 일대에서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이를 반기며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대부분은 분통을 터트리며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수소문하였다. 그리고 기드온이 범인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성난 무리가 요아스의 집 앞을 진 치고서 소란을 피웠다.

  그러자 요아스가 밖으로 나와서, 그들에게 한마디 했다.

  “여보게들! 대체 왜 이러는 게요? 왜 그렇게 소란이요?”

  무리는 싸울 기세로 그의 주위에서 소리쳤다.

  “몰라서 물어요! 어서 당신 아들을 내놓으시오! 기드온 그자는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여신까지도 모욕했소. 그는 죽어 마땅한 자요.”

  요아스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그들에게 대답했다.

  “당신들이 바알의 편을 들어 싸우겠다는 것이오? 당신들이 바알을 구원하겠다는 거요? 누구든지 바알 편에 서는 사람은 내일 아침까지 죽고 말 것이요. 바알이 정말 신이라면, 그가 스스로 싸우고 자기 제단도 스스로 지키게 두시오.”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성난 주민들은 그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고 발길을 돌려 다들 물러갔다. 그날 이후로 기드온에게는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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