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사탄은 끊임없이 계교를 꾸며 인간을 넘어뜨리려 애써왔습니다. 그들의 뚜렷한 목적의식은 적이지만 상당히 인정할만한 수준입니다. 거짓말쟁이, 꾀는 자, 영적 사기꾼으로서 그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연약함을 꿰뚫어 보며 감언이설로 녹이고 유혹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교회사에 등장하는 이단부터 현재 국내외로 활동하는 이단까지 간략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회사를 고찰하는 동안, 이단의 수법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크게 바뀌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흥하고 망하기를 반복하며 새 이단이 옛 이단을 대체해 왔으나 옷만 갈아입었지 속은 비슷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단의 주장이 허황되고 난잡하며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오류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속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유식하다는 사람도 이단에 빠지며 현혹될 수 있습니다. 신앙 연조가 짧다면 이해가 가지만, 간혹 목회자들이 빠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단의 정의
'이단'이라는 용어는 거짓 믿음에서 나온 분리 또는 파당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고전 11:19; 갈 5:20). 현재는 외형상 기독교의 모양을 가졌지만 교리나 신앙 면에서 다르고 불건전한 무리를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교회사 속에 나타난 이단
1) 영지주의(그노시스파)
헬레니즘 철학에 유대교, 기독교의 요소가 혼합하여 형성된 사상 체계이다. 기원후 144년 이단으로 정죄되기까지 큰 추종 세력을 형성하였던 이단이다. 영지주의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이원론이다. 영혼과 물질, 영과 육, 선과 악 등 근본적인 두 원리 간의 대립과 대결 속에서 만물이 형성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교리적인 특징은 그노시스(앎, 비밀 지식)를 통해 인간의 참된 기원(起源)이 지고한 신성(神性)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성품 중 영적 요소가 물질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노시스가 구원의 수단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예수님이 육체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육체를 입은 것처럼 보인 것이며, 공생애 동안 육신을 빌려 입었다고 주장하였다.
2) 마르키온
마르키온은 2세기 초에 나타난 거짓 교사다. 그는 저서를 통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분노에 가득 찬, 열등하고 결함이 있는 존재였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께 보냄을 받아 여호와의 악한 분노에서 우리를 구원한다고 가르쳤다. 그의 사상은 반유대교적으로 흘러, 구약을 모두 배제하고 신약 가운데서도 누가복음과 목회 서신을 뺀 바울의 10개 서신만을 인정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였다. 예수는 외형상 사람으로 보였을 뿐, 실제로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가현설).
3) 몬타누스주의
170년경, 몬타누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언 운동이다. 몬타누스는 프리기아의 여신 키빌레 신전의 사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뒤 하나님의 선지자로 가장하였다. 그가 받았다는 계시는 종말이 임박하였으므로 세속적 활동과 결혼을 금하고 말세를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신자들은 그의 말에 속아 자기들이 하던 활동을 모두 내려놓고 금욕적 생활에 매진했다. 그는 동역자 프리쉴라와 막시밀라와 함께 무아경에 빠져 신탁으로 받은 계시를 선포하였다. 특히 막시밀라는 "내 뒤에는 더 이상 예언자가 오지 않을 것이며, 종말의 완성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97년, 막시밀라가 사망했지만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새 예루살렘의 도래를 기다리던 신도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프리기아 지방을 중심으로 지리적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4) 아리안주의
아리우스는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였다. 그가 이단으로 정죄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주장을 세웠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는 하나님에 의해 피조되었으며 신적 속성을 지닌 유한한 피조물일 뿐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논쟁과 소란은 황제의 명으로 공의회 소집을 불러왔고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5) 펠라기우스주의
브리타니아 출신의 펠라기우스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엄격한 수도승이었다. 그는 율법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인간의 본성은 부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담의 죄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에 불과하며,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원죄로 인한 인간의 전적 부패를 부정하였다. 그리고 이신칭의마저 부정했다.
6) 세미-펠라기우스주의(반펠라기우스주의)
어거스틴의 예정론과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견해 사이를 반씩 걸터앉은 입장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구원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구원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첫째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렸고 하나님의 은총은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즉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적 사역을 의미하고 있다. 세미-펠라기우스주의는 어거스틴의 원죄론과 은총론을 받아들이지만 거기에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혼합시켰다. 그래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원죄로 인한 타락을 너무 가벼이 여긴 처사다.
7) 알미니우스주의(알미니안주의)
네덜란드 신학자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예정론과 대립각을 세웠다. 칼빈주의 입장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있고 믿음을 갖는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기는 데 반해, 알미니우스는 최종적으로 사람이 응답한다며 스스로 믿음을 가질지, 안 믿을지 할 수 있다는 견해다. 구원 받으려는 의지가 있으면 택하심을 입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조건적 선택). 칼빈 교리에 의하면 구원의 여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이다.
8) 율법폐기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면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 번의 칭의로 미래의 모든 죄까지 용서받으며 구원이 확정되기에, 다시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을 염려나 걱정이 전혀 없다고 맹신한다.
국내외에 활동하는 이단들
1) 여호와의 증인
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에 의해 시작된 단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와 같은 일종의 현상화로 나타난 인간적 신체일 뿐 성육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육체라는 옷을 입은 영의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 외에도 성경을 신비적, 상징적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심각한 오류를 가지고 있으며, 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의 신성을 부인하며, 지옥을 부인하고, 행위 구원을 주장한다.
2) 몰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19세기 미국에서 생겨난 이단이다. 창시자 조셉 스미스는 '후기성도 그리스도의 교회 믿음 지침서'라는 교리집을 저술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그들이 믿는 신은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다. 황당하게도 신이 옛적에 인간이었으며 나중에 승화되어 신의 존재로 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또한 아담의 범죄로 인류가 타락하게 된 것을 믿지 않는다. 아담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래서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세례도 필요 없다고 여긴다.
3)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성경과 함께 경전으로 사용하는 '원리 강론'을 토대로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이단이다. 성경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에서 동떨어진, 전혀 일치하지 않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런데도 추종자들은 '원리 강론'의 가르침을 성경보다 더 권위 있게 여기며 완성된 언약으로 받아들인다.
4)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교주 이만희를 중심으로 생긴 이단 종파다. 신천지의 교리는 앞서 발흥했던 통일교, JMS 등 이단의 교리를 모아 혼합시킨 양상이다. 그래서 교리에 모순이 생기고, 때에 따라 수정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14만 4천의 무리를 인용하여 자신들만 그 수에 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14만 4천에 들면, 순교한 영과 결혼하게 되어 영생을 얻으며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요 교리다.
5)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1960년대 선교활동을 하던 외국인들의 영향을 받은 권신찬, 유병언, 박옥수에 의해 시작되었다. 구원파의 교리는 한 번 회개하고 죄 사함 받은 사람은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며 지옥에 간다고 가르친다. 또한 구원받은 날을 기억하고 있어야 구원받은 것이라고 한다. 구원받은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증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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