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세속화의 흐름에 휩쓸린 교회

이원범 2020. 2. 22. 10:37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인간의 욕심이 끝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의 진리다.

흙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는 아무 힘도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바람이 불고 불씨가 흩어져 날리면 논밭을 태우고 산림을 불사를 흉포한 화마로 변모한다. 인간의 탐욕은 마치 밭에 떨어진 불씨와 같아서 태워도 태워도 족함이 없고 서둘러 잡지 않으면 주체 없이 커져 나간다. 가히 재앙의 시작과 같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깨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욕심으로 말미암아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의 삶이 그렇고 단체든 또 어디든 마찬가지다. 집단인 교회도 탐욕으로 인해 망가지면 나락으로 떨어져 추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교회라고 해서 탐욕이 존재하지 않는 금역이 아니니 말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며 경험적으로 우리는 안다. 오래전 기독교가 인간사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던 시절, 종교 지도자들은 돈과 색을 밝히는 사기꾼으로 타락하였다.

허울뿐인 종교 지도자들은 구원과 신앙을 마치 세일즈 상품처럼 판매하는 저속한 행태를 보였고, 파가 나뉘어 헐뜯고 물어뜯는 싸움 끝에 교회는 삼분오열되었다. 세속화에 물든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교회 분열은 교회사의 슬프고도 부끄러운 기억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드러내 보일 교회가 탐욕에 눈이 멀어 사람들이 조롱할 추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대중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 중에 교회의 부패한 사건이 빈번히 전해지고 있다. 주의 종이나 교회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 중 다소 수위가 높은 것을 자주 접한다. 일부 언론사의 편파적인 성향이 이를 부추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범죄 자체를 부인하지 못한다. 세속화된 교회는 과거의 존중받던 사회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수모와 멸시 속에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는 세속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바 소경은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

세속화란

세속화라는 말은 세상을 본받는 것,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시대의 세계관, 가치관, 이데올로기, 유행하는 풍조에 휩쓸려 본래의 기독교 정신을 잃어버리는 영적 타락에 빠진 상태를 의미한다. 세속적 요소와 합하였으니 바른 기독교가 아니며 바른 교회가 아니다. 세속화의 질병에 걸려 광기 어린 세상과 닮아가는 이 상황은 심히 통탄할 노릇이며 매우 속상한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타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세상은 점차 죄악에 물들었고 알게 모르게 믿는 자들도 그 흐름에 휩쓸렸다. 세속화는 눈에 보이는 세계 이면에 주도권을 가진 권세자로부터 기인한 영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세속화에 대항하는 행위는 마찬가지로 영적 활동이며 세상을 무대로 치르는 투쟁이라 여겨진다. 양 진영에서 싸우는 무리는 각기 다른 출신을 가진 자일 수밖에 없다. 교회가 세속화되어가는 과정 속에 중생한 자녀만이 회개와 순종이라는 수단을 통해 세속화에 저항하고 있다. 이 싸움은 세상과 벗 되지 말고 세상의 더러움과 오염으로부터 자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세속화의 흐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리키신 가나안 지경과 같다. 이방 종교와 문화에 젖어있는 땅,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지만 아직 벌할 날이 오지 않은 가나안 민족의 땅 말이다. 높다란 건물, 즐비한 가게, 밤에도 대낮처럼 환히 밝히는 네온사인, 발걸음이 이어지는 거리에 북적이는 소음과 노랫소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지금 세상은 손짓하고 있다. 여기 있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서 안식을 누리라고 속삭인다.

사람의 의식에 형성된 세속적 가치관 및 이데올로기는 환경, 문화, 교육, 교류 등을 통해 전달된다. 시공간의 제약이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상상하는 것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흐름이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 세계와 완전히 연을 끊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혹은 어느 곳에 몸담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동안 세속화는 피해 가지 못한다. 이것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흐름으로서 쉽게 거스를 수 없다.

세속화된 교회의 특징

1) 교회의 기업화

21세기 현대 사회를 아우르는 기본 경제 시스템은 자본주의다. 세계는 돈을 중심으로 하나로 얽혀있다. 그래서 지구 경제촌이라 부른다. 과거에는 국가권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무력이 대표적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돈, 곧 자본이 국가의 힘을 좌우하게 되었다. 이 자본주의 사상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서 생산성과 실용성에 대한 과다한 집착을 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교회는 환경적 영향을 받았다. 신앙의 외형적인 면을 추구한 나머지 겸손과 자기부인, 거룩함과 인내, 순종 등 신앙적 가치관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서구에서 시작된 성공과 번영의 신학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세속화의 흐름에 휩쓸린 교회는 첫 번째로 상업적 이득에 목매는 경향을 보인다. 신학교부터 문제가 많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난립하는 학교들은 재정 충당을 위해 무분별하게 학생을 뽑아 목회자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사명감이 결여된 목회자는 바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채 직업인으로서 사역을 행하며 큰 교회, 높은 사례금, 다양한 처우 등을 먼저 챙긴다. 교회 운영과 재정을 위해 전도하고 심방하며, 교인 숫자와 헌금 수입을 올리려고 고군분투한다. 영리 기업이 추구하는 목적과 같다. 돈이 최고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실이다. 물질주의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다고 다고 졸라댄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바란다.

두 번째는 성장주의 및 성공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어느 사역자는 주님께서 받으실 영광 외에 교회 이름이 주목받고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길 원한다. 이 신학은 한국교회에 들어온 이후 폭발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성공을 과시하는 가치관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참된 주의 종과 작은 개척교회들은 열등하다는 인식에 처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지출의 큰 비중이 크고 넓고 보기 좋은 건물과 기관을 세우는 데 쓰인다. 화려한 외형은 일종의 투자로써 사람의 이목을 끌려는 의도가 있다.

2) 지나친 권력욕

지난해 SNS를 통해 '나도 당했어'라는 의미의 미투 운동이 한동안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온 국민이 충격을 받았고 추악한 범행에 치를 떨었다. 피해자보다 절대적 우위에 놓였던 범행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입마개 삼아 약자를 유린했다. 권력에 의한 범죄는 사회 곳곳에 만연하며 쉽게 은폐가 가능하기에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권력은 그 자체가 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권력에 오른 사람이 교만하여 권한을 남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교회는 일찍이 막강한 세속 권력을 거머쥐고 부패를 저질렀던 과거가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듯, 교회가 가장 힘이 강할 때 부패하기도 가장 극심하였다.

한국교회도 세속화의 여파로 많은 부분이 변질하였다. 로마 가톨릭은 교황을 주인 삼고 교회 전통을 앞세워 부패했는데, 한국교회도 비슷하게 따라가는 중이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 주님이신데, 교회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이 온 것이다. 성도가 교회 사역자의 말에 따르는 것은 올바른 일이나 성도가 담임 목사의 종이 되는 일은 잘못이다. 성도나 주의 종이나 주님 안에서 형제요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나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 주인이 아니다. 성도를 소유로 생각하고 종처럼 부린다면 크나큰 월권이다.

문제는 힘을 가진 자가 교회 안팎에서 지나치게 권력욕을 부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주도권 대립이 발생한다. 대립은 투쟁과 분열로 이어지고 주변이 황폐해지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서로 하나 되어 협력하면 보기에 아름답다. 하지만 계급이 나뉘고, 차별이 생기며, 누구는 무시당하고, 누군가 권력을 부린다면 그 아름다움은 깨어진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며 명예직도 아니다. 벼슬로 여겨서도 안 된다. 교회 안에 들어온 권력은 반드시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3) 개인주의

세계는 자본주의와 더불어 무한 경쟁사회로 치달아가고 있다. 좁은 땅덩이에 인구는 많고 자원은 부족한 한국의 경우, 어느 사회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 경제를 지탱함에서 기술력과 인적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작용과 같다. 우위에 서면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 하지만 도태될 경우 만만치 않은 불이익을 겪을 뿐 아니라 생존의 위협에 놓인다.

한국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어려서부터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회다. 함께 수업을 듣는 급우가 경쟁자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가 경쟁자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하며, 동료의 등을 밟고 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풍토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보듬어주는 따뜻함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경쟁에 따른 고통과 수고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생겨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흉흉한 사건이 인간의 감정을 메마르게 한다. 가족과 친족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불신 사회가 되었다. 어쩌면 개인주의는 주위 환경에 의해서 주입된 자기 보호일지도 모르겠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경계하다 보니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불우한 이웃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도움받기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

한국의 교회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미 많은 교단과 교파로 나뉘었고 개교회들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성장주의에 치우쳐 각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나씩 떨어져 있는 것처럼 독립되어 보인다. 어느 교회는 다른 교회 성도라도 데려다가 인원을 채우려 하며 떠나는 성도가 없도록 딴생각이 못 들게 바쁘게 돌린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입맛에 맞는 교회를 쇼핑하듯 물색하며 정착은 하지 않고 여러 곳을 떠돈다. 교회의 권징은 효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아무리 큰 문제를 일으켜도 교회만 옮기면 제재를 당하지 않는다.

세속화에 대항하여

본연의 순수성을 잃고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다. 바로잡기 위해 나서기에 너무 지체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교회는 세속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까? 그동안 전통처럼 자리 잡은 교회 체계는 누군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하면 또 분열을 일으킬 뿐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자정 능력을 잃고 독선적으로 나가는 기성 교회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대신 주안점으로 삼을 목표는 신학교와 목회자 교육과정의 개편이다. 기존 신학 교육을 감당하던 신학교들이 순수한 복음에 입각한 가르침을 내세웠다면 교회 사역자들이 본질을 떠나 세속화된 사상에 물들었겠는가? 교회에서 벌어진 문제에 신학교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가? 마땅히 책임 소재를 시인해야 할 것이다.

부디 신학에서 세속주의를 걷어내고 경건한 주의 종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할 교육 기관이 세워져야 한다. 서구의 편향된 신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암 덩어리처럼 전염성 강한 사상으로 교회를 부패하게 했으니, 누군가 바른 안목으로 가려내고 심각한 부분은 도려내서 무엇이 교회 본연의 가치며 진짜 정체성인지 발견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며 겨자씨를 비유하신 적이 있다. 씨앗을 보면 아주 작아서 보잘것없지만 자라난 후엔 놀라울 정도이다. 대안이 될 신학교는 기존 신학교에 비하면 작을 테지만 거대한 세속화의 흐름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기도 제목.

  •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았음을 용서하옵소서.
  • 이생의 자랑을 위해 명예와 인기와 평판을 위해 주의 일을 하던 죄를 용서하옵소서.
  • 이 세상을 사랑하며 돈과 물질을 탐하며 자기 뜻을 행하며 살았던 죄를 용서하옵소서.
  • 내 교회 인수를 늘리기 위해 타 교인에게 손을 뻗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 내 교회만 성장시키려 하고 비양심적인 삶을 살았던 죄를 용서하옵소서.
  • 성도를 돈으로 보며 갈취할 대상으로 삼았던 죄를 용서하옵소서.
  • 교인 수만 늘리려 하고 그들의 구원 문제를 소홀히 하던 죄를 용서하옵소서.
  • 맡기신 양 떼보다 지나치게 많은 수를 맡으려고 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 좁은 길로 나아가라 하셨는데 내가 잘하는 방법, 좋아하는 방법, 잘되는 비법을 추구하며 넓은 길로 다녔던 죄를 용서하옵소서.
  • 바른 복음을 외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로 현혹시킨 죄를 용서하옵소서.
  • 상처 입고 떠날까 봐 죄를 지적하지 못하고 회개를 외치지 못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 죄를 회개하는 믿음의 싸움을 가르치지 못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 동성애를 인정하고 옹호해 주었던 죄를 용서하옵소서.
  • 부유하거나 학식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는 죄를 용서하옵소서.
  • 직분을 계급 삼아 강압적인 언행을 일삼고 자기주장 강하게 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 권세를 부리며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쫓아낸 죄를 용서하옵소서.
  • 파당을 나누고 갈등을 조장하는 죄를 용서하옵소서.

  • 이정석, 「문화신학」,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12
  • 김재성, 「기독교신학, 어떻게 세워야 하나」,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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