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not lawful. 바리새인들의 시비는 모세로부터 주어진 율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당하지 못하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안식하라고 주신 것이지 억압할 의도로 주신 게 아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과 더불어 온갖 금지 조항들은 율법의 본래 의도를 흩뜨려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Sabbath. '쉬다' 혹은 '중지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샤밧'에서 나온 단어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쉬라고 명하신 날이다(출 16:23). 대개 율법은 언약 백성의 거룩함을 위해 주어진 것이 많은데 안식일이나 안식년(레 25:1~7), 위생에 관한 것은 약간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6:4 the bread of the Presence. 성전에서 여호와 앞에 내놓기 위해 준비하는 빵(레 24:5~9). 오직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이 빵을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먹은 것은, 의식법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생명이라는 상위 가치에 의해 잠시 묵과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6:5 lord of the Sabbath. 안식일과 율법을 제정하신 이가 주님이시다. 이는 그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심이며 더 이상의 논쟁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하나님께 규정을 들이밀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6:7 a reason to accuse. 본업은 제쳐놓고 하나의 목표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 같다. 예수님을 상대로 말로는 못 이기니 지켜보며 논박할 구실을 얻고자 함이다. 공인된 지도자들이 감정에 휘둘려 이런 음흉한 짓을 저지른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의 문제점은 자신들이 알고 확신하는 내용이 틀렸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6:8~10 대적자들의 노림수를 아시면서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가진 논리를 파훼시키신다. 이를 통해 반감을 품을 자가 많겠지만 그들 중 소수는 잘못에서 돌이킬 수 있다.
6:13 apostles. '위임받은 전령'을 뜻하는 말로, 대리자처럼 자신을 위임한 사람을 대신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후 8:23). 예수님은 그의 몸 된 교회를 맡아 관리할 자들로 사도들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매고 푸는 권세를 주셨다(마 16:19).
6:16 Judas Iscariot, who became a traitor.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간에,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배반이다.
6:20~49 평지에서 전해진 설교라 하여 '평지 설교'로 불리며, 산상수훈(마 5~7장)과 많은 유사점을 지닌다. 차이는 분량이 훨씬 짧고, 열두 제자를 선정하신 이후에 주신 것이라는 점이다.
6:20 Blessed. 종교적 의미를 담은 용어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다. 쉽게 말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각도로 미치는 좋은 영향이라 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관계, 일, 자녀, 건강, 부, 내세의 부와 영광을 망라한다. you who are poor. 가난한 자에 대한 포커스는 누가의 성정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부가 많고 적음은 영적 상태와 직결되지 않는다. 못 가진 자라서 특혜가 주어진다기보다 신령한 은혜는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고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6:21 weep now. 타락 이후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의 삶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런 날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밤이 깊으면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갚으시는 하나님은 우는 사람에게 언젠가 웃을 수 있도록 보응하신다(시 126:5, 6; 전 3:4).
6:23 their fathers did to the prophets. 핍박자들의 악행이 어디서 난 것인지 그 출처가 밝혀졌다. 그들의 조상 역시 핍박자였다. 해 아래 새것이 없음은 진리다(전 1:9).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6:24~26 구약 성경에서 저주가 선포되는 대상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부류였다(창 3:17~19; 신 28:15). 그것은 여기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온다. 주님께서 은유적으로 지칭하신 대상들은 자신의 초라한 영적 실상을 알지 못하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안돈하는 자들이다.
6:27 Love your enemies. 여기에서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 이유로 원수는 본인이 행한 일로 말미암아 처벌받는데, 그 고통이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쌍히 여겨야 한다.
6:29, 30 다툼 혹은 대립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관용하는 마음을 품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한 개인 소유에 대한 권리를 때에 따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권장 사항에 속하여 가능한 한 지키는 것이 좋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예를 들면 몸이 상하거나 생명이 위급한 문제가 걸린다면 어떻게든 자기 몸을 보호해야 한다.
6:32~34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세상 사람들 수준을 넘어서 희생적 베풂과 헌신이 가능해질 정도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쉽게 이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믿는 자의 다름을 깨달을 것이다(마 5:16).
6:35 sons of the Most High. 사랑하며 의를 행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의 소유 삼으심과 같은 이치다(출 19:5).
6:37 forgive. 타인을 용서하는 일은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한 선결 과제다. 누군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회개로 나아가려면 먼저 용서하지 못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6:39~45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겨냥하는 듯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종교인들의 음흉한 내면과 꿍꿍이를 미워하시고 제자들에게 경계하신 바 있다(12:1; 마 16:6; 막 8:15). 그들은 자신의 영적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정죄하였기에 '외식하는 자'라 일컬어졌다. 남의 허물을 들추기 전에, 그들 자신의 더러움을 인식해야 했다.
6:46~49 '주여'라고 부른다고 확실히 종인지는 알 수 없다. 정말 종이라면 주인의 말에 순종할 것이요 순종하지 않는다면 종이 아니다. 순종은 믿음과 직결되며, 믿음의 진위를 판가름해 준다(약 2:22). 그리고 순종 여하에 따라 나중 형편이 결정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