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무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길갈 사울의 본거로 찾아왔다.
사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간 건강히 지내셨습니까? 어르신.”
“예, 아무 탈없이 잘 지내고 있지요. 오늘은 왕께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사울은 그와 독대하고자 신하들을 모두 밖으로 물렸다.
“말씀하십시오. 이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시고 왕께 기름을 부어,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아말렉이 매복해 있다가 이스라엘을 기습했으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겠다. 너는 이렇게 하여라. 아말렉과 전쟁을 벌이고 아말렉과 관계된 모든 것을 거룩한 저주 아래 두어라. 예외는 없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아기, 소와 양, 낙타와 나귀까지 모조리 진멸해야 한다.’ 예외가 없다는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어려울 만한 일은 아니군요.”
사무엘은 그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의 집무실을 나왔다. 사울은 군사령관 아브넬을 불러서 군세를 모으고 출정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수 일 후 이스라엘과 유다로부터 소집된 병사들이 유다 들라임에 집결하였다. 그곳에 모인 병사들의 수효는 이십일 만 명에 육박했다. 이스라엘군은 아말렉인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네게브 사막으로 나아갔다. 사울은 사막 북부에서부터 멀리 이집트 경계 근처 수르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인들의 부락을 보이는 대로 습격하였다. 그는 병사들에게 여자나 어린아이, 양과 소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였으나, 아말렉 왕 아각이 밧줄에 묶인 채 그의 앞에 무릎 꿇리고 도처에 살찐 양과 소 떼가 널려있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서 아각을 비롯해 가장 좋은 양과 소들을 죽이지 않고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여호와는 그의 그런 행동에 매우 실망하셨다. 그를 아끼고 귀히 여기셨던 만큼 실망감은 적지 않았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스럽구나. 그가 내게서 등을 돌리고 내가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다.”
사무엘 역시 사울에게 큰 실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실망은 분노로 변했다. 그는 여호와 앞에 엎드려 사울의 불충에 대해 밤새 회개하였다. 이튿날 아침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길갈로 출발했다. 그가 도착할 시각, 사울은 아말렉에서 가져온 양과 소들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난 후였다.
그는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사무엘을 맞으러 달려가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선견자님! 여호와의 명령을 제가 모두 수행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양과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가 걷는 길에는 많은 가축 떼의 발자국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제 귀에 들리는 이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무엇입니까?”
“아말렉의 전리품 가운데 몇 가지일 뿐입니다. 병사들이 가장 좋은 소와 양 일부를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자고 해서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것은 전부 진멸하······”
“그만두십시오. 더 들을 필요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저 죄인들! 아말렉 자손을 저주 아래 두어, 완전히 멸하라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왕께서는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데, 어찌하여 이런 것들을 챙기고 버젓이 악을 저질렀습니까?”
사울은 억울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여호와께 순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키신 대로 아각 왕을 붙잡아 왔고 아말렉 자손을 진멸했습니다. 병사들이 여호와께 희생제를 드리려고 양과 소 일부를 남겨 두었기로서니 그것이 어찌 잘못이 된단 말입니까?”
“번제와 제물을 올려드리는 것과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 이 두 가지 중에 여호와께서 어느 쪽을 더 기뻐하시겠습니까? 주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주께 거역하는 것은 이교에 빠져 놀아나는 것과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왕께서 여호와의 말씀을 져버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더 이상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여호와의 말씀과 당신의 지시를 무시했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여 철저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제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와 함께, 여호와께 희생제를 드려 주십시오.”
“안 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그가 돌아갈 차비를 하자, 뒤에서 사울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이번 한 번만 저를 위해 희생제를 드려 주시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아십시오!”
난처해진 사무엘이 힘써 저항하니 옷자락이 찢어졌다.
“여호와께서 바로 지금, 왕께 주셨던 이 나라를 찢어 내셔서 왕보다 나은 이웃에게 넘겨주셨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나를 버리지 마십시오. 지도자들과 백성 앞에서 나를 지지해 주십시오. 내가 돌아가서 여호와를 예배할 테니, 나와 함께 가 주십시오.”
사무엘은 사울의 끈질긴 요청에 못 이겨 그와 함께 제단으로 가서, 여호와께 희생제를 드렸다. 그리고 니서 말했다.
“아말렉 왕 아각을 내 앞에 데려오십시오.”
아각은 행여 죽을 고비를 넘겼나 싶어 좋아하였다. 사무엘은 칼을 높이 치켜들고 아각을 후려 베었다. 그리고 곧바로 라마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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