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91장 멸망한 도성

이원범 2021. 6. 26. 08:28

  시드기야 재위 9년 열째 달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전 병력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외세의 침략을 연이어 받아온 유다 왕국은 국고가 바닥을 보였고 양식 수급조차 원활하지 않아, 오래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가까이 다가온 징조였다.

  예레미야는 피골이 상접하고 쇠약해진 몸이 되어서도, 보이는 자들에게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외쳤다.

  “여호와의 말씀이오. ‘이 성읍에 머무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일 당할 것이다. 칼에 찔려 죽거나,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 투항하면 목숨은 부지할 것이다! 이 도성은 반드시 바빌로니아 왕의 군대에게 멸망당할 것이다.’”

  유다의 고관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밤낮 외쳐대는 예레미야에게 질력이 났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굶겨 죽이기 위해, 그를 붙잡아 말기야의 집 물웅덩이에 집어넣었다. 웅덩이 안에는 물이 없고 대신 진흙뿐이어서, 예레미야는 진흙 속에 파묻혔다. 다행히 왕궁 관리 에벳멜렉이 왕께 간청을 올려, 죽기 전에 그를 건져올릴 수 있었다. 물웅덩이 밖으로 건져진 후에도 그는 왕궁 경비대 뜰에 감금되었다.

  어느 날,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성전으로 불러내어 이렇게 물었다.

  “당신께 물어볼 게 있으니, 숨기지 말고 대답하시오.”

  “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왕께서 저를 죽이실 겁니다. 가령 제가 하는 말에 왕께서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않겠네 네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게 넘겨주지도 않을 것이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바빌론 왕의 장군들에게 투항하면, 너도 살고 이 도성도 불타지 않을 것이다. 너의 가문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바빌론 왕의 장군들에게 투항하지 않으면, 이 도성은 갈대아인의 수중에 들어가 모조리 불타 없어질 것이다. 그들 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나는 갈대아인들에게 투항한 유다 백성들이 두렵소. 그들이 나를 멸시하여 조롱섞인 말을 해댈 것이오.”

  “그런 염려하지 마시고 부디,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시면 여호와께서 왕의 생명을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왕께서 투항을 거부하시면 어떤 일이 있을지, 저는 이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왕의 아내와 자식들 모두 갈대아인들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그들 손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왕께서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붙잡힐 것이며, 그가 이 도성을 불태워 허물어 버릴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극심한 번민에 사로잡힌듯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예레미야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윗 성에서 1년 반 기간 농성을 지속하였다. 계속되는 공격에 성벽이 뚫려 그와 처자식들이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혔다. 여호와를 무시하고 끝까지 불순종한 죄의 대가는 매우 참혹한 것이었다. 그의 아들들이 그가 보는 앞에서 살해당하였고 그는 두 눈이 뽑힌 채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한 달 후 느부갓네살의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이끄는 보병사단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는 명령에 따라 왕궁과 가옥에 불을 지르고 성벽을 무너뜨렸다. 성전의 금은 기명과 보화는 수탈당하고 건물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고위 성직자, 군관, 행정 관료들, 지도층 인사들은 처형을 당하거나 바빌론으로 끌려갔고 일부 주민들도 사로잡혀 갔다. 유다 땅에는 가장 비천한 자들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여호와의 돌보심 아래 시작되었던 다윗 왕조가 사백 년만에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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