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108장 배신자

이원범 2021. 6. 27. 09:31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시는 헌신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셨다. 그러던 와중에 제자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주님께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시는 주님은 그가 지향하고 있던 목적을 이루어 주실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님께 가졌던 기대가 무너지고 불만이 싹을 띄우는 순간, 사탄이 그의 마음을 자리 잡았다..

  달빛이 비치는 늦은 밤, 예루살렘 거리에 홀로 걸어가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경계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저 앞에 당도했다. 문득 번민이 찾아왔다.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망설일 수야 없지.’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겨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곳에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예수를 은밀히 잡아들일 방법에 대해서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무얼 더 망설이는 겁니까? 경비대를 동원해서 잡아야지요!”

  “그러다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책임은 어찌 지시렵니까?”

  “그동안 우리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언변과 속임수에 능한 자라, 신사적인 방법으론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 그에게서 큰 수모를 겪어 보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곧 내일이면 유월절이 시작되니 서둘러 일을 진행하십시다.”

  “어르신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유월절 기간에는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하니까요.”

  그때 어느 낯선 청년이 그 회의에 끼어들며 말했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모인 자들의 눈이 그에게로 몰렸다. 그들은 의아해하며 저가 누구냐며 서로 수군거렸다.

  “당신은 누구요?” 회의 의장인 가야바가 물었다.

  “저는 당신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지요.”

  의석에 앉아있던 자들 가운데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말했다.

  “이제야 알겠군. 저 사람은 그의 제자 중의 하나요.”

  그 말을 듣자, 가야바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호오, 반갑소. 아주 잘 왔소이다. 안 그래도 당신 같은 사람을 지금 찾고 있었는데, 먼저 이렇게 찾아와 주시니 참 감사하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그를 넘겨주면 내게 얼마를 주겠소?”

  그들은 잠시 동안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고서 은전 서른 개를 제안하였다.

  “알겠습니다. 내일 밤 다시 오지오.”

  그때부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줄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이튿날, 한적한 시간에 제자들이 여쭈었다.

  “주님, 오늘이 유월절 희생을 준비하는 날인데, 주님께선 어디에 장소를 얻어 식사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의 얼굴을 번갈아 보시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물 한 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를 따라가거라. 그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든지 그 집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할 방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십니다’ 하여라. 그럼 그가 너희에게 이미 청소를 마친 넓은 다락방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 식사 준비를 하여라.”

  베드로와 요한이 시내로 들어가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그대로였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 주인에게 이야기하고, 그곳에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였다. 예수님은 그날도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해가 진 후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이 준비된 마가의 집을 찾으셨다. 택하신 열둘 외에도 따라온 제자들이 많아 한 방에 모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고,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의 때에 들어가기 전에, 너희와 이 유월절 식사를 함께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너흰 모를 거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모여서 함께 먹기까지는, 이것이 너희와 먹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가 되리라.”

  이내 주님의 얼굴에서 중한 괴로움이 엿보였다. 곧 방 안의 분위기도 숙연하여졌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너희 모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 상에서 먹던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하는 성경의 말씀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 그 일이 생기기 전에, 너희는 미리 이것을 알고 내가 누구인지 바르게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보낸 사람을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또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너희 가운데 나를 배반할 자가 있느니라.”

  제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묻기 시작했다.

  “주님! 저는 아니지요?”

  “저, 저는요, 주님. 아니겠죠?”

  “그게 누굽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반드시 혼쭐을 내서, 그런 짓 못하게 만들겠습니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이 빵 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다.”

  주께서 빵 한 조각을 떼어 포도주에 적시고, 곁에 앉았던 가룟 유다에게 내미셨다.

  “네 할 일을 어서 해라.”

  유다는 빵 조각을 들고서, 곧장 어디론가 사라졌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아련히 바라보시던 주님은 시선을 거두고,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인자는 이미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니, 전혀 뜻밖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자를 배반하여 넘겨줄 그 사람에게는, 오늘이 파멸의 날이니라.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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