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seventy-two others.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이곳에만 유일하게 등장한다. 그동안 열두 제자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주님께서 인정하실 헌신된 일꾼들이다. two by two. 둘이 있으면 단점이 보완되고 협력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10:4 sandals. 닳아서 못쓰게 될 때를 대비한 여분을 챙기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greet no one. 어쩌면 인사는 사적인 부분일 뿐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상관없어 보이는데, 예수님은 그들이 사역에 온전히 집중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그들의 주요 역할은 평안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심판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다(3:7).
10:6 a son of peace. 평안은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 임한다. 죄가 남아있는 한 정죄로 말미암은 불안,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는다.
10:11 9:5 해설 참조.
10:12 여기에서 '그 동네'가 소돔보다 악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창 13:13). 그렇다면 차이는 회개에 대해 들었지만 반응하지 않음에 있다.
10:13 권능으로 임한 이적을 보았으면 즉시 엎드려 통회함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교만하며 완악한 상태라는 것이다.
10:15 Capernaum. 예수께서 주 거처로 삼으시고 많은 사역을 행하셨던 마을.
10:16 이들에게 부여하신 권위는 결코 얕잡아 볼 것이 아니다. 사느냐, 죽으냐 하는 중대한 기로가 이 보잘것없는 무리에 좌우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선포했는지보다 누구의 말씀인지가 더 숙고할 점이다(요 7:16).
10:17 in your name. 귀신을 두렵게 한 것은 칠십 인의 입에서 선포된 예수님의 이름이다. 그들은 그 이름의 권세로 불법한 자들, 곧 악의 영들을 물리친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싸우며 귀신을 압도할 수 있다.
10:19 authority. 9:1 해설 참조.
10:20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말과 동일하다(계 20:12, 15, 21:27). 주께서 자기 이름의 권능을 위임하신 시점에서 그들은 크신 은혜로 택함 받은 하늘나라의 시민이다.
10:21 you have hidden . . . revealed.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지적 능력에 관계없이 어린아이처럼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는 자기 공로를 주장할 수 없으며 자랑해서도 안 된다(고전 1:26~29). 그저 은혜로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뿐이다.
10:23, 24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기다려 온 대상이 이들 눈앞에 있다. 제자들은 말씀의 역사적 성취를 두 눈으로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이 한 가지 사실을 인지한 순간, 그들은 속에서 약동하는 희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10:25 lawyer. 율법을 해석하고 풀이하는 전문가로서 유대 내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부류다. 예수께서 인망을 얻으시고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자, 아마도 경계하는 심리가 생겨난 것 같다.
10:27 신 6:5; 레 19:18을 인용하면서, 간결하게 율법 전체를 아우르는 계명을 언급했다.
10:28 do this. 처음 계명을 주신 이유는 우리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출 19:6). 그러나 제대로 지킬 수 있냐는 문제로 넘어가면 전혀 답이 나오질 않는다(갈 2:16). 하나라도 어기지 않고 지켜야 함에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해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부류는 지킬 수 있다 단언하였다.
10:31 제사장 직무의 특성상 부정한 것에 접촉해선 안 된다는 변론이 나올 수 있지만(민 5:2), 상위 가치인 생명을 경시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10:32 레위인도 부정한 것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겨우 의식법 하나 지키려고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살인에 준하는 큰 잘못이다.
10:33~35 앞선 성직자 계통의 인물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척하는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데 반해, 사마리아인은 일면식도 없는 유대인에게 지나칠 정도의 헌신을 보인다.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 낀 반목의 감정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다(요 4:9).
10:35 two denarii. 환자가 여러 날 머물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10:36 Which . . . proved to be a neighbor. 질문에 대한 답을 질문자 본인이 말하게 하는 예수님의 독자적 화술이다. 사람은 누구나 편견을 가지며 원치 않는 사람에게 심리적 방어벽을 쌓고 살아간다. 이웃이 될 사람과 안 될 사람이 벌써 굳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잡한 생각은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 매우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10:38 a village. 두 자매가 사는 베다니 마을일 가능성이 큰데(요 11:1), 누가는 의도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은 것 같다
10:39 sat at the Lord’s feet and listened. 당시 여성에게 주입된 역할 구분에 반하는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배움으로 얻을 실익을 감안하면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10:40 주관이 뚜렷한 마리아에 비해 마르다는 불안해 보인다. 예수님은 그녀가 과중한 부담을 느끼도록 무언가 요구하신 적이 없다. 그녀가 곤혹스러워 한 부분은 자신이 세운 계획과 고집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10:41, 42 간혹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지 않은 일을 하려고 고민하고 애쓸 때가 많다. 본인이 인정받으려는 동기도 있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는 생각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실수를 줄이려면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롬 12:2; 엡 5:17).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