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죄의 본질

이원범 2024. 7. 20. 21:45

죄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기본 윤리와 관련한다. 양심 및 인간 사회가 정한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 죄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행위를 죄로 규정한다. 이는 기독교적 관점이 세상보다 고차원에 속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식으로 죄를 말하면 내가 왜 죄인이냐며 반발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들이 이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막는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죄를 이해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그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금방 느낀다. 죄는 보이지 않고 형태가 없어서 마치 없는 것처럼 자신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을 통해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고, 주위의 반응과 사회로부터 받는 제재로 심각성을 깨닫는다. 우선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이 진실의 전부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이미 오래전에 죄가 들어왔고, 죄의 본질과 죄의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다.

죄의 성립 요소

인간이 지은 최초의 죄는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뱀의 유혹을 받았지만, 이는 순전히 자의에 의한 결정이었다. 정리하면 죄는 하나님의 법과 양심에 대항하는 고의적 반항이다. 그리고 그 일을 획책하는 자가 사탄이다.

1. 하나님의 법과 양심
일반적으로 죄의 유무를 판별할 때 법을 논하는 것은 국민이나 거주인이 국가의 법 아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결정적인 죄의 기준이라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나중에 정죄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죄가 이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인간이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하나님은 처음부터 말씀하신 분이며 지금도 여전하시며 앞으로도 동일하시다. 지음 받은 자가 지으신 이에게 판단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설령 말씀을 듣지 못하였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핑곗거리가 되지 않는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죄를 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2. 의지적 결정
하나님은 인간을 지성을 가진 뛰어난 존재로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의지에 제한을 두거나 강제하지 않으시고 그를 고유한 인격으로 대우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주-피조물 관계를 넘어서 인간과 교제하고 사랑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면서 그에게 영광 돌리기를 기대하시면서 말이다.

의지적 결정은 이처럼 좋은 것을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선택을 내려 선의 자리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간은 스스로 말씀을 어겨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죄는 언제나 자기 의지를 통한 결정이고 사언행이다. 반대로, 의지가 담기지 않은 것은 죄로 여기기 어렵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없는 피조물은 죄를 지을 수 없다. 이는 우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다른 말로 자유의지를 가지는 것에 대한 책임성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요구된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뜻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른 측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다.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다. 종은 주인의 음성을 들으며 명령에 순종한다. 따라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무엇이든 주님께 묻고 실행함이 당연한 것이다. 반대로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의로 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음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하는 모든 것이 죄이다.

3. 필연적 시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선의 자리에 머물렀다. 시험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바빙크는 아담이 행로의 마지막 단계에 서 있던 자가 아니라 행로의 초기에 서 있는 자라고 했다. 아담은 지구상의 누구보다 완전하였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그의 무죄 상태는 최상의 조건과 환경이 뒷받침되어서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 그에게 시험이 찾아온 것은 우연일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사탄이 시험하는 이유는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죄는 사탄의 시험에서 잉태한다. 사탄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필연적이다. 다만 한 가지 목적에서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다. 또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용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쉬지 않고 찾아오는 사탄의 시험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나 우리로 나태함에 빠지지 않게 하고 날마다 주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도록 이끈다.

죄책과 오염

죄에는 반드시 죄책이 따른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임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성질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원상태의 거룩한 빛이 더러운 것에 휩싸여 현저히 뒤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오염이다. 첫 사람이 범죄한 후로 죄가 들어오고 인간은 죄책과 오염을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었다. 두 요소는 죄를 짓고 들어왔으니 죄의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죄란 실체가 없이 존재하기에 이것을 죄의 본질이라 말하기도 한다.

죄책과 오염의 전개
죄가 있는 곳에 죄책과 오염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원리다. 누가 죄를 지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눈빛부터 차갑게 식어, 그가 응당 무슨 벌을 받아야 하며 반드시 대가가 따라야 함을 역설한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심한 냉대와 비난과 조소가 잇따른다. 죄가 클수록 적대감과 혐오하는 감정이 더욱 커진다. 죄에는 마땅한 책임과 형벌이 따르고 더럽고 추악한 것이란 사실을 모두가 입을 모아 주장한다. 이런 반응은 왜,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배워서 아는 것일까 아니면 기본적으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이것은 무의식에 새겨진 죄에 관한 법, 양심이 작용하는 것이다.

두 요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각자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고 나서 첫 번째로 느낀 당혹스러움은 벌거벗은 수치였다. 그들은 본래 옷을 입지 않았으나 빛나는 광채가 옷처럼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 벌거벗은 수치를 미처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천으로 짠 옷이 아닌 거룩함과 순결로 옷 입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인해 광채가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육체의 벌거벗음이 드러났다.

두 번째로 온 것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운 감정이었다. 이 감정은 죄를 지음으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이다. 죄를 지으면 양심이 이를 알리고, 하나님께 반역한 죄에 대한 두려움을 내 영이 느낀다. 세 번째로 책임회피가 뒤따랐다. 죄책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이 반응의 원인일 것이다. 이는 순순히 죄를 인정하려는 의지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죄의 책임을 덜고자 하는 것이며 어느 정도 하나님에게 일의 책임을 돌리는 행위였다.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기품 있고 아름다웠던 지위에서 처량하도록 안쓰러운 위치로 추락한 두 사람이었다.

영의 감각 상실
인간은 땅의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늘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받았다. 마치 지상의 피조물 같지만 내면은 영적 존재와 다름없었다. 따라서 육체와 관련한 본성과 욕구를 가졌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을 가졌다. 그리고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영의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인간은 영과 육의 특성이 조화를 이룬 존재였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부패가 일어나자, 영의 특성이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희미해지고 하나님을 보거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것이다. 성경은 이 상태를 '죽은', '죽었던', '죽은 자' 등 죽음에 연관시키고, 신학에서는 '영적 죽음'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실제 죽은 것은 아니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것이기에 죽음을 미리 앞당겨 부른 것이라 여길 수 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하나님과 교통이 불가능하게 됨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죄는 영의 감각을 차단하고 하나님과 분리되게 하였다. 이로써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함으로 얻는 신령한 기쁨을 잃고, 자신을 높이고 육신을 만족시키는 데서 오는 감각적 기쁨을 추구하게 되었다.

내재하는 죄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죄의 경향성을 가진다. 선조로부터 죄를 유전·전가받은 탓이다. 이것은 인간 안에 들어온 더러운 것 그 자체로서, 앞서 말한 오염에 해당한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죄는 외부에서 유입되어 몸 구석구석에 안착하고 마음, 곧 혼에 영향력을 투사한다. 죄가 들어오는 장소는 육체에 한하고, 영의 내부로 들어오거나 혼합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부패한 마음을 죄의 처소로 여기는데, 이것은 증명이 어려운 부분이라 넘어가도록 한다. 다만 죄가 육체에 거하더라도 마음에 역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내재하는 죄는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불러온다.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온전히 자기 것이라 여기는 사람은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자신을 내어준다. 이런 일은 실로 불행하고 경악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죄의 포로가 되어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기꾼 중에도 이렇게 강한 자는 또 없을 것이다.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내재하는 죄로 인한 속임과 종노릇은 그 자체로 형벌이다.

육체의 사망
죽음을 필연적이고 자연적인 종말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으나, 기독교의 입장은 죽음이 죄의 결과요 형벌로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동산의 모든 과실을 아담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은 더불어 이같이 경고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죄가 들어오기 전 아담은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었으며, 만약 그것을 먹었다면 죽는 일 없이 영생하였을 것이다. 죄를 짓지 않았으니 악을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그는 영생할 기회를 소유하였고, 뱀의 시험을 통과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실패와 더불어 그도 시험에 굴복하여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선고되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죄가 들어온 순간 육체는 사망의 권세에 복종하게 되었다. 육체의 사망은 이미 결정되어 번복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회개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회개를 기쁘게 여기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죄책을 감하여 주시지만 이것을 면제해 주시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가 죄로 심히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죄로 더러워진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은 복이 아니다. 이것을 분리시키려면 육체가 죽어야 한다. 사망은 형벌이 맞지만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옥 형벌
죄의 형벌이 현생에서 겪는 불행과 죽음뿐이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꽤 있겠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포탄이 빗발치는 최전선에 선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최후의 공의로운 심판과 지옥 형벌이 기다림을 증거한다. 사도 요한은 이를 '둘째 사망'이라고 말했다. 흙으로 지어진 인간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속사람인 영은 불멸한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은 불멸의 상태로 꺼지지 않는 불의 형벌을 당한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신학 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재하는 죄의 속성  (0) 2024.08.23
죄의 유혹  (0) 2024.08.06
죄의 기원  (0) 2024.07.16
성령의 은사 간구기도문  (0) 2024.06.28
교회를 위한 은사론  (0) 2024.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