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뮤지션의 꿈

이원범 2020. 2. 20. 09:50

계기는 이거였던 것 같습니다. 호기심에 친구가 듣던 CD를 들었는데 느낌이 왔었죠. 저도 모르게 그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당시 수입이 안 되서 정식으론 구할 수 없었는데 PC통신 어딘가에 올라와 있었어요. 몇 가지 곡을 받는 데만 수 시간이나 걸렸어요. 그때는 지금이랑 비교하면 엄청나게 느렸으니까요. 꽤 어렵게 구하고서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나네요.

고등학교 다닐 무렵은 일본 문화가 서서히 개방되는 분위기였습니다. <러브 레터>가 생각나네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저는 학생 때라 안 갔고, 누나가 보러 갔었습니다. 그 시기에 일본을 자주 접해서인지 대학 들어가서 일본어 전공을 택하더라고요. 저는 그보다 음악을 좋아해서 듣는 음악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에 몰입한 이유는 음악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어요. 음악의 세계는 끝이 없는 바다 같았습니다. 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어요. 제가 원한 악기는 전자 기타였답니다. 보면 볼수록 멋있고 기타리스트가 되면 정말 멋질 거라는 확신까지 생겼죠. 그래서 저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처음에는 멋있어 보여서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젊으니까 좋아하는 만큼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생애 첫 기타를 손에 쥔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초기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학교 공부는 관심 밖이었고, 어떻게 하면 기타를 빨리 잘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자고 꿈꿨습니다. 학창 시절 순수하게 내 욕심에서 불러일으킨 욕망의 산물이 바로 뮤지션의 꿈입니다. 꿈꾸기를 악한 것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말이 좀 심하게 나온 것도 같네요. 일단 제 자신을 비판한 것이니 그렇게 이해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꿈꾸기에 관한 생각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꿈을 가지는 것은 좋은 현상일까요? 제 이야기를 해본다면, 제가 꾼 꿈은 최고의 뮤지션이 되는 것이라고 아까 이야기했는데요. 그것이 저에게 유익이 되었나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저는 음악에 별로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더불어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섞여 제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는 결과를 맺었습니다.

최고가 되고 싶은 꿈이 잘못인가 하는 의문이 들 텐데요.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보통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요? 왜 최고가 되어야 하나요? 혹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고가 되려는 건 아닐까요?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목표치를 높게 잡아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케이스라도 하나로 귀결됩니다.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꿈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유 한 가지입니다.

저는 아직도 자신이 자기만족을 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따라 행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면,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구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위와 자기 뜻대로 하는 행위를 말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한 삶은 자기 뜻대로 하는 행위이기에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 시절 제가 자기만족을 위해 음악을 하던 삶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이었기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자기만족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해악이 크며 동시에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만족을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젊어서 고생해 가며 돈을 버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늙어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서겠지요.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입니다. 여생을 만족스럽게 살다 가고 싶은 거예요. 곧 이런 식으로 귀결되겠군요. 불만족-만족-죽음.

그렇다면 불만족한 시기를 거의 거치지 않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나중은 어떤 식으로 귀결될까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만족-불만족-비극적인 죽음.

성공한 사람에게 불만족이라니 말이 안 될 것 같은데 꼭 그렇지 않습니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면 분명 불만족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이른 나이에 성공한 배우가 있습니다. 노년까지 쭉 좋은 배우로 있어 주면 좋으련만 중간에 술과 약물에 빠져 재기하지 못하고 잊힌 경우 혹은 죽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전 세계를 열광시킨 유명 가수가 자기 관리에 실패해서 젊어서 요절한 경우도 예가 되겠습니다. 자기만족도 욕망에 속하기 때문에 끝이 없어요. 계속해서 달라고만 요구해 옵니다. 탁구공만 하던 요구가 야구공만 하게, 그다음 핸드볼만 하게, 그다음 배구공만 하게, 축구공만 하게, 농구공만 하게 점점 큰 것들을 요구해 와요. 왜냐하면, 만족이란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작으면 오지 않거든요. 그러니 더 큰 것이 필요해요. 그렇게 크기를 늘려나가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크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그저 소수의 극단적인 케이스라고 여길 수는 없어요. 많은 이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악한 영 곧 사탄의 수하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아시죠. 사람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가장 잘 쓰는 미끼는 쾌락이고요. 처음 그들이 다가와 내미는 선물은 거절할 필요가 없는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를 좋아하고 받아들이면 조금씩 그들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이 주는 선물에 의존하면서 조금씩 자유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죠. 점차 자극이 강해지는 동안 사람은 마치 족쇄에 걸린 노예처럼 그들에게 종속됩니다. 그들은 쾌락만이 아니라 두려움까지 넣어줍니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술과 약물에 손을 댑니다. 나중에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결론을 내자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에게 사명을 알려주십니다. 사명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꿈과는 다릅니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비된 것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속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은 꿈 이상으로 그 사람에게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을 택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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