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늘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예를 들면 무엇을 먹을지 무슨 옷을 입을지 어디에 갈지 누구와 만날지 등 말입니다. 선택할 일은 참 많고 다양합니다. 거기엔 결혼이나 종교, 학업, 사업상의 중요한 결정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한 번의 선택이 내 일생을 좌우할 수 있으니까요.
겨우 사람의 선택이 이렇게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은 얼마나 더 중요할까요. 쉽게 생각해 봐도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과 비교도 안 될 무게를 가집니다. 놀랍게도 그분의 선택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좌우합니다. 영원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가요. 그만큼 하나님의 선택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중요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 있으며, 선택받지 못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명하자면 선택받은 사람은 죄에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받습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 한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음에 이릅니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선택받지 못 한 사람 입장에선 가혹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니 말입니다.
선택 여부에 따라 완전히 극과 극에 처하기 때문에 이 교리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좀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시냐? 불공평하시냐? 라는 항의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답변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고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죄를 짓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죽고 죗값을 받아야만 합니다. 죄인은 그저 멸망을 기다리는 처지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기에 반드시 상응하는 형벌을 내리셔야 하지요. 하지만 택하신 자에게 속죄의 방편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죄인들이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대신 받게 하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를 이루사 구원의 길이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그 길로 인도하여 죄를 용서받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는 죄인을 향해 긍휼과 자비를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정해놓으신 일에 대해 사람은 개입할 수 없으며 일말의 영향력조차 발휘할 수 없습니다. 택하고, 부르며, 귀중한 일을 맡기고, 무슨 복을 내릴지 등 전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각 인생을 향한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되고 실행됩니다(롬 9:10~12).
길에서 개종을 권하는 어느 종교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신처럼 혹은 신에 버금가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것은 한낱 어리석은 상상에 불과합니다. 저는 딱 잘라 아니라 대답하고 오래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진리에서 떠나면 그런 거짓된 것에 속아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속이는 일에 가담하게 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죄를 속함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죄인입니다. 깨달음을 통해 신의 경지에 오른다는 말은 사기나 다름 없습니다. 사람은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여전히 사람일 뿐입니다. 무슨 행위를 통해 신적 능력을 얻었다는 소리는 높아지려는 욕망이 투영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누가 그것을 줄 수 있겠습니까?
유한한 인간은 하나님 안에 존재 의의가 있으며 그분의 거대한 경륜에 포함되어 각자 의지대로 살아갑니다. 그 증거로 제한된 선택만 가능합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 수정이 일어나 육체라는 그릇이 지어지면 하나님께서 어느 영혼을 넣으십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사람은 웬만한 것이 결정된 상태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영혼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서 특유의 성격이 있고, 고유의 은사를 소유합니다. 맡겨진 역할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 정도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영혼이 언제 어디서 어떤 성별을 가지고 어느 부모에게서 날지 미리 정하셨습니다. 만약 사명자라면 그가 어떤 직분으로 무슨 일을 감당해야 할지 정해 놓으셨습니다(렘 1:5). 사람에 따라 귀히 쓰임 받는 주의 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주의 종이 있습니다(딤후 2:20). 본인 의사는 들어가 있지 않아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지음 받은 사실이 이제 실감이 되시나요?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어서 아쉬워할 분도 있겠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지요. 저와 여러분은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할 줄로 압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분의 뜻하심도 선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로 택함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엡 1:4). 우리를 자녀로 받으셨으며,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며, 바른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이는 지극한 영광이며 주 안에서 맡겨진 일에 충성할 때 하늘에 약속된 모든 풍성한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인자하신 아버지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 영원하신 아버지 안에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참 자유와 기쁨,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순종하며 우리의 죄를 구속하신 그 은혜에 크게 기뻐하고 찬양하며 영원히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