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하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그의 후손이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열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늙은 종을 불러 말했다.
“이리 가까이 오게, 네 손을 내 언약의 증표 위에 얹고 하늘과 땅의 하나님께 맹세하여라.”
“예, 내 주여. 맹세하겠나이다.”
늙은 종이 다가와 할례의 증표에 손을 얹었다.
“내 아들 이삭에게 어울릴 아내를 찾아야 해. 알겠지? 이곳 가나안에서는 안돼, 반드시 내 고향으로 가서 찾도록 해. 이것은 내 유언과도 같으니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야.”
이삭의 결혼은 아브라함의 남은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내 주여, 그 여인이 혹시라도 저와 함께 오지 못하겠다면 어찌할까요? 그럼 아드님을 고향 땅으로 데려가야 하는지.”
“그건 당연히 안 될 말이야! 절대 안 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를 아버지 집과 고향 땅에서 이끌어 내시면서 주신 약속이 있어. 이 땅을 내 후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 말이야. 그러니 너무 염려치 말게. 그가 천사를 앞서 보내셔서 내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게 하실 것이니.”
“주여, 분부하신 대로 고향으로 가서 꼭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종은 낙타 여럿과 많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으로 길을 떠났다. 가나안 남부 네게브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나홀 성은 한 달 이상의 먼 길이었다.
드디어 나홀성에 이른 종의 일행들은 우물 곁에 멈춰 휴식을 취하였다. 긴 여행길에 지쳐 목에 물을 축여야 했다. 때마침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저녁 무렵이었기에, 늙은 종은 주께서 택하신 여인을 순조롭게 만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가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였을 때, 선뜻 마시게 하고 더욱 은혜를 베풀어 낙타에게까지 물을 마시게 하면 이것을 표적으로 삼아 주님께서 이삭을 위해 작정하신 여자인 줄 알겠다고 하였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어느 소녀가 어깨에 물동이를 메고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 아가씨, 물동이에 든 물을 좀 마실 수 있겠소?”
“그럼요, 드십시오.”
소녀는 얼른 물동이를 내려서 손에 받쳐 들고 그에게 마시게 했다. 그녀는 아리따운 외모에 고운 심성까지 지닌 소녀였다. 물을 실컷 마시고 나서, 그는 기운을 차리고 소녀를 바라봤다.
“제가 낙타들을 위해서도 물을 길어다 주겠습니다.”
소녀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동이의 물을 여물통에 붓고, 다시 우물로 내려가 물동이를 채웠다. 그녀는 낙타들에게 물을 다 먹일 때까지 계속해서 물을 길어 왔다. 늙은 종은 하나님께서 보이신 놀라운 응답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그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소녀가 이삭의 베필로 택함 받은 여인이라는 사실이 눈앞에서 증명되는 듯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한 종은 그녀에게 다가가 금귀고리와 금팔찌를 선물하며 물었다.
“참 감사하오. 헌데 아가씨는 뉘 댁 따님이시오? 혹시 집에 우리가 묵어갈 수 있겠소?”
“이렇게 귀한 것을······. 저는 밀가와 나홀의 아들인 브두엘의 딸입니다. 저희 집에는 묵을 방이 많고, 겨와 여물도 넉넉합니다.”
소녀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 듯 난처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출신이 아브라함의 친족임이 밝혀졌다.
종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에 신실하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리브가는 집으로 달려가서, 모든 식구에게 이 일을 알렸다. 리브가의 오라비인 라반은 그 일을 전해 듣고 우물가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종의 일행을 맞이하여 집으로 인도하였다. 늙은 종은 그의 집에서 극진히 환대를 받으며 음식을 청함 받았다. 그는 여행 후에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주인의 임무를 먼저 수행하고자 했다.
“제가 드려야 할 말씀을 드리기 전에는, 밥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하시구료.”
종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신임받는 종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주인의 아들인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 주인의 옛 고향인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어떻게 하여 리브가와 만났는지, 어떤 이유로 그녀가 적합한 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리브가의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 일을 진행하셨음을 믿게 되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결혼에 동의하였다. 노인은 목적을 달성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그런 다음 은금 패물과 옷가지를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었고 그녀의 오라비와 어머니에게도 값진 선물을 주었다. 그와 그의 일행은 비로소 저녁을 먹고 밤을 지냈다. 종은 다음 날 아침 바로 떠나고자 하였다.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는 리브가가 자기들과 며칠 더 머물기를 원하였지만, 결정은 그녀에게 맡겼다.
리브가는 이미 결정된 일에 지체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아브라함의 종 일행과 함께 가나안으로 출발하였다. 리브가와 그 늙은 하인은 육십여 년 전 아브라함이 지나왔던 길을 따라 멀리 남쪽으로 여행하였다.
저녁 무렵, 이삭이 들에서 묵상하던 중에 늙은 하인의 낙타 떼가 돌아오고 있었다. 리브가는 눈을 들어 이삭을 보고는, 낙타에서 내려 하인에게 물었다.
“들판에서 우리를 향해 오는 저 남자는 누구입니까?”
“제 주인이십니다.”
리브가는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늙은 하인은 이삭에게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리브가를 그에게 인도하였다. 아브라함의 소원대로 이삭은 친족에게서 아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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