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11장 속임수

이원범 2021. 6. 20. 14:55

  이삭은 너무 늙어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는 맏아들 에서를 사랑하였기에 축복하는 자리에 야곱은 제외시키고 에서만 불렀다.

  “내 아들아.”

  “예, 아버지.”

  “이제 내가 죽을 날이 머지 않았을 게다. 너는 사냥감을 잡아와 내게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거라. 내가 그걸 먹고 너를 축복해 주겠다.”

  이삭은 장자 에서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 주려줄 마음이었다. 그때 이삭이 하는 말을 리브가가 엿듣고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 에서에게 부어 질까 봐 안달이 났다. 리브가는 사냥하러 나간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야곱을 이삭에게 들여보내려고 마음먹었다. 이삭이 눈이 어두운 점을 이용한 속임수였다. 그녀는 야곱에게 엿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의 말에 따르라고 강요하였다.

  “하지만 어머니, 만약 아버지가 저를 만져 보시면 모든 게 들통날 텐데요, 그럼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겁니다.”

  “됐다. 그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가서 염소를 끌고 오너라.”

  리브가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야곱이 염소를 끌고 와서 어머니에게 건네자, 그녀는 이삭이 몹시 좋아하는 별미를 요리했다. 그리고 에서의 옷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입히고 그의 두 손과 목덜미에 염소 가죽을 덮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준비한 별미와 갓 구운 빵을 그의 손에 건넸다.

  야곱은 음식을 들고 아버지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그래, 아들아, 너는 누구냐?”

  이삭은 앞이 어두워 그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가져왔으니 이걸 드시고 마음껏 축복해 주십시오.”

  이삭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목소리도 그렇고, 사냥하러 간 때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일찍 돌아와 음식을 가져왔으니 말이다.

  “벌써 다녀와? 아니, 어떻게 그리 빨리 잡았느냐?”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내 아들아,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한번 만져 봐야겠다. 네가 정말 에서란 말이냐?”

  야곱이 이삭에게 다가갔고, 이삭이 그를 만져 보았다. 염소가죽으로 덮은 야곱의 손은 에서처럼 까실까실한 감촉이었다. 참 혼란스러웠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이삭은 그의 말을 믿고 가져다준 음식을 먹었다. 이삭은 식사를 마치고 야곱을 축복하였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나가자마자,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다. 에서는 곧바로 별미를 준비하여 아버지께 가져왔다.

  “아버지, 일어나셔서 이 아들이 사냥해 온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제게 축복하소서.”

  순간 이삭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는 누구냐?”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허! 이게 뭔일이냐? 그럼 먼저 다녀간 자는 누구란 말이냐? 나는 네가 들어오기 전에 식사를 마치고, 그를 축복해 주었다. 그가 영원히 복을 받을 게야.”

  깜짝 놀란 에서가 털썩 주저앉아 비통하게 흐느꼈다.

  “아버지! 제게도 축복해 주셔야지요. 흐흐흑.”

  “네 동생이 속임수를 써서 네 복을 가로채 갔구나.”

  “그 녀석 이름이 야곱이라 불린 것이 다 이유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놈은 두 번이나 사기를 쳤습니다. 처음에는 제 장자권을 빼앗더니, 이제는 축복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아버지, 저를 위한 건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이삭 역시 야곱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비통해하였다. 에서가 간절히 그에게 청했으나 베풀 축복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야곱을 섬기는 자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고되었던 대로 야곱에게 주어졌다. 약속된 복은 야곱의 후손이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믿음에 의거하지 않고 속임수에 의한 강탈은 이삭 가정의 신뢰와 평화를 깨는 결과를 가져왔다. 에서는 그 일로 야곱을 원수로 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에게 복수할 마음을 품었다.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의 들끓는 분노로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야곱의 안위를 걱정하여 그를 하란으로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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