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분이 풀린 삼손은 신부를 버려두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데리고 딤나로 내려갔다. 그가 처가를 방문하자, 장인은 그를 보고서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 자네가 여긴 어쩐 일로?”
“장인어른,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제 아내를 보러 왔습니다.”
그 블레셋인은 집으로 들어서려는 삼손을 막아 세우며 말했다.
“내 딸은 이곳에 없네.”
“그럼 아내 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아니, 이제 내 딸은 자네 아내가 아니네그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보게, 나는 자네가 내 딸을 지독히 미워하리라 생각해서 그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냈어. 잔치석에서 자네와 어울렸던 청년 중 한 사람에게 말이야.”
그의 말을 듣고, 삼손은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되었다. 너무 슬프고 원통하여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너무 상심하지 말게. 그 밑으로 여동생이 있는데 그 애가 더 예뻐. 그 애를 아내로 삼으면 안 되겠나?”
그는 어떻게든 삼손을 달래 보려고 했으나, 그의 마음이 이미 상하여 소용없었다.
“크윽··· 더는 못 참겠소! 이번엔 내가 블레셋 사람을 쳐부숴도 내 잘못이 아니오.”
이 말을 하고는 돌아서서 나왔다. 삼손은 자신이 받은 상심을 블레셋에게 그대로 갚아주기로 결심하고, 어떤 식으로 보복할지 잠시 궁리하였다.
마침 밀을 추수할 시기였으므로 무르익은 곡식들이 낫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세 그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여우 사냥에 나섰다. 대략 삼백 마리쯤 생포한 뒤에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한 쌍씩 꼬리를 묶고, 꼬리 사이에 횃불을 달고, 드넓은 곡식 밭에 풀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불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붙어 손쓸 방법이 없었다. 무르익은 곡식과 베어 놓은 곡식단, 포도원과 올리브 농원에 이르는 매우 광범위 화재였다. 피해를 당한 블레셋 주민들은 차마 삼손에게 대항할 수 없어서, 그와 연루된 여인과 그녀의 아버지를 불살라 분풀이하였다. 그 일로 인해서 다시 자극을 받은 삼손은 본격적으로 그들에게 보복을 가했다. 그는 마치 분노의 화신처럼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딤나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할 만큼 참담하게 변했다. 거리와 마을에는 시체가 즐비하게 널렸고 가옥들과 밭에 자라던 것들이 사라지고 재만 남았다. 그의 활약상은 이스라엘 곳곳으로 바람처럼 전파되었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그 사건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블레셋 인들이 삼손을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그를 잡아들이기 위해 유다 성읍 레히에 병사들을 주둔시키고 수색 작업을 벌였다. 그곳 주민들도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삼천 명의 인원을 뽑아 그 작업에 동참하였다. 유다 주민들은 삼손을 수소문한 끝에, 그가 에담 바위틈에 거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유다 사람 삼천 명이 그를 잡기 위해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삼손과 접촉하여 말을 건넸다.
“이보시오, 삼손! 당신 때문에 이 나라가 얼마나 난처한 상황에 놓였는지 알고나 있소?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지배를 받고 있는 실정인데 그렇게 그들의 화를 돋우면 어떡합니까!”
삼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목에 힘을 주어 대답하였다.
“먼저 시작한 건 그놈들이에요! 난 받은 대로 갚아 준 것뿐이죠.”
“어쨌든 우리는 당신을 잡아서 저들에게 넘겨주려고 온 거요. 그러니 도망칠 생각을 말고 순순히 따라오시오.”
삼손은 주위를 둘러보고서 도망갈 마음을 접었다.
“나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약속하지. 우리는 당신을 묶어서 그들에게 넘겨줄 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소.”
곧이어 한 사람이 밧줄을 가지고 나와, 그의 손을 등 뒤로 포개어 묶고 그의 상반신을 질끈 동여매어 구속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를 바위틈에서 이끌고 나왔다. 유다 주민들의 인솔 하에 그는 블레셋이 주둔해 있는 레히로 호송되었다. 삼손이 레히에 다다르자, 블레셋 인들은 큰 함성을 지르며 그를 마주하여 달려갔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큰 능력으로 그에게 임하셨다. 그의 팔뚝 위의 밧줄이 마치 삼이 불에 타듯 떨어져 나가고, 그의 손에서 끈이 벗겨졌다. 마침 바닥에 죽은 지 얼마 안 된 나귀의 턱뼈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고, 먼저 온 자들부터 가격하여 쓰러뜨렸다. 블레셋 인들은 쪽수가 그보다 우세할 뿐 전혀 그의 맞상대가 되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블레셋 측 사망자만 늘어갔다. 천 명쯤 그의 손에 죽어나가자 나머지 병사들은 기겁하여 사방으로 달아났다. 단신으로 적군을 몰아낸 실로 엄청난 쾌거였다.
삼손은 이 승리로 인해 몹시 감격하며 외쳤다.
“나귀 턱뼈로 무더기 위에 무더기를 쌓았노라. 나귀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노라.”
이렇게 외치고 나서, 그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긴 싸움을 치르는 도중 땀을 과하게 흘렸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보아도 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심한 갈증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목한 바위를 터뜨려 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물을 실컷 마시고 나자, 기운이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높아진 마음이 부끄러워 주님께 기도하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삼손의 영웅담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온 땅으로 퍼져나가 널리 회자되었다. 블레셋 인들은 그의 초자연적 힘에 굴하여, 더 이상 이스라엘에 흉포한 행위들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압제받은 지 사십 년 만에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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