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모아 제비를 뽑았다. 지파 중에 베냐민 지파가, 가문 중에 마드리 가문이, 가문 중에 기스의 아들 사울의 이름이 뽑혔다. 백성들은 그를 두고 함성을 내질렀고, 사무엘은 왕국에 관한 여러 규정과 법규를 가르치며 그것을 책에 모두 기록하여 성소에 두었다. 그 후 여호와의 영에 감동된 무리가 사울이 사는 기브아로 모여들었으며 그의 수하가 되었다. 그러나 그를 얕잡아 보는 세력도 더러 있었다. 자치권을 지닌 각 지파들의 연합에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 국가의 모습으로 체제가 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지파 조직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행정 기구나 관료제도도 발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그에 따른 행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과도기에 있었다.
그러한 불완전한 시기, 암몬 왕 나하스가 세력을 키우고 요단 동편을 급습하였다. 갓, 르우벤의 대다수 성읍들이 암몬에 넘어가고, 주민들은 학살당하거나 오른 눈을 뽑혀 노예로 종속되었다. 그나마 암몬으로부터 간신히 피신한 자들이 야베스에 칠천 명 가량 남아있었으나,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야베스에 모인 자들은 대책을 논의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들과 화의를 맺어야 합니다.”
“관두게, 그리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
“그치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논의가 진행되어도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암몬의 나하스왕이 병력을 이끌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야베스 지도자들은 대항하기를 그치고, 그들에게 투항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나하스가 있는 암몬 진영으로 나아와 항복 의사를 밝혔다.
“우리와 조약을 맺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그러자 나하스는 험악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다. 너희를 살려 주겠다. 단, 너희 오른눈을 모두 뽑아야 한다. 너희를 이스라엘의 치욕 거리로 만들고 나서야 너희와 조약을 맺을 것이다.”
“···! 그, 그것은 좀 어려운 조건입니다. 만약 원하시는 대로 하실 진데,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전체를 적으로 돌리셔야 할 것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하하핫, 내가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줄로 아나? 내 선조들은 이스라엘에게 본토를 빼앗겨 멀리 척박한 땅으로 쫓겨났지. 그리고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어. 이제는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영지를 빼앗고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 난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않아, 올 테면 전부 나와서 싸워보라지.”
“예, 왕께서 그리 원하신다면 저희에 대한 공격을 잠시 미뤄주시겠습니까? 이스라엘 각지로 전령들을 보낼 시간을 주십시오. 칠 일이면 될 겁니다. 우리를 도우러 나타나는 자가 아무도 없으면, 그때 당신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알았다. 너희 좋을 대로 해라.”
나하스는 그들은 요구를 수락하여 칠일의 말미를 주었다. 야베스 지도자들은 사울이 살고 있는 기브아로 전령들을 급파하여 야베스의 소식을 전하게 했다. 기브아 주민들은 그 소식을 접하고 심히 통탄해하며 큰 소리로 울었다.
“어서 이 사실을 주공께 알려야 하오! 그는 어디 계신가?”
“밭에 나가셨는데 곧 돌아오실 때쯤 된 것 같습니다.”
마침 사울이 소를 몰고 밭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무리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왜 다들 울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의 수하 중 한 사람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에게 말했다.
“야베스에서 전령이 왔었습니다. 그가 전하기를 요단 동편 바산과 길르앗 모든 지역이 암몬에게 점령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야베스 성읍은 건재한데 곧 적의 손에 넘어갈 상황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앙갚음으로 그들의 오른 눈을 다 빼버리겠다고 협박하였답니다.”
그 소식이 들려질 때 여호와의 영에 사울에게 임하였다. 사울은 마음에 의분이 치솟아, 사나운 맹수처럼 포효하였다. 귀가 쩌렁 울릴 만큼 큰 괴성이었다.
“내게 칼을 다오.”
사울은 수하에게서 칼을 받아 들고 자기 소를 후려 베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체를 열두 덩이로 각을 떴다. 그는 발이 빠른 젊은 수하 열두 명을 택하여 그들에게 각을 뜬 살덩이를 하나 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각 지파로 흩어져서 백성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려라. 만약 그들이 불응하거든 그 살덩이를 보여주고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 함께하지 않으면 너희의 소도 이렇게 되고 말 것이다.’고 말하여라.”
그들은 각 지역으로 흩어져 사울의 명령을 하달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전쟁을 주도하시니, 이스라엘 전역으로부터 싸울 자들이 화급히 모여들었다. 사울은 그들을 베섹으로 집결시켜 출진 준비를 하였다. 수 일 후, 이스라엘 진영에 모인 병사의 수는 33만에 육박하였다. 야베스 주민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사울은 모든 병력을 이끌고 야베스로 진군하였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밤이 찾아왔으나, 이스라엘군은 진군을 강행하였다. 요단 강변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이어 요단 강을 도하하여 아침이 이르기 전까지 야베스 인근에 도달하였다. 사울은 정찰을 보내어 적의 위치를 조사하게 했다. 그 후 군세를 세 부대로 나누어 편성하고 적진을 둘러싸도록 배치시켰다. 날이 밝아오자, 모든 부대가 암몬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암몬은 예기치 않게 협공을 당하여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스라엘군은 그 기세를 몰아 대적을 쳤다. 싸움은 한나절 간 이어졌고, 암몬 병사들은 무수히 전사하였고 극소수만이 필사적으로 달아나,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스라엘은 명백한 승리를 얻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통해서 압제받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이 받았던 치욕을 되갚아 주셨다. 사울은 사무엘 이전에 있어왔던 구원자들과 마찬가지로 카리스마적 자질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리 지어 길갈로 가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그들은 거기서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를 예배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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