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58장 불순종의 늪

이원범 2021. 6. 23. 12:28

  얼마 지나지 않아서 블레셋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강한 위세에 밀려 패전을 거듭하였다. 유다 지역의 상당 부분이 그들에 의해 잠식되었고 베냐민 게바에 블레셋 수비대가 세워졌다.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섰으나, 사울의 아들이 요나단이 게바에 주둔하는 적들을 공격하여 적장을 죽이므로, 양 국가의 전면전이 다시금 발발하게 되었다.

  길갈에 머물고 있던 사울에게 전령 한 사람이 급하게 달려와, 보고하였다.

  “보고 드립니다! 아벡에 집결한 블레셋 군세가 에브라임 산지 베델을 향하여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래, 적의 수효가 얼마쯤 되느냐?”

  “선두에 병거 부대가 셋, 기병대가 여섯, 보병의 수는 너무 많아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사울은 사태의 긴박성을 깨닫고 곁의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동원령을 내리고 병사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라! 블레셋 놈들이 단단히 화가 난 것 같구나.”

  그의 얼굴에서 초조함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대신 중의 한 사람이 그에게 진언하였다.

  “주공께 아룁니다. 연거푼 전투에서 패한 저희 이스라엘은 많은 젊은이들을 잃었습니다. 만족하실 만한 인원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중대한 사안이니 사무엘 님을 불러서 주님의 뜻을 여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어서 사무엘님을 부르도록 해라!”

  전령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소집 명령을 내렸고, 사무엘에게 가서 왕의 요청을 전달했다. 사무엘로부터는 칠일 내로 가겠다는 말과 함께 희생제를 준비해 놓으라는 답변이 왔다. 수 일 안에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조언자의 말대로 잘 싸울 만한 자들은 매우 적었다. 모인 자들은 너무 늙었거나 너무 어리거 어딘가 다친 자들이 많았다. 사울은 그들 중 삼천 명을 추려내어 이천 명은 자신의 부대에 편입시키고, 천 명은 요나단 휘하에 배속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길갈 진영의 병사들은 전황이 매우 불리하다는 사실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술렁였다. 겁에 질린 병사들의 탈영이 속출하였다. 심지어 요단 강 건너편으로 도망치는 자들도 있었다. 사울은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사울은 희생제를 준비해 다 해놓고, 그가 오기만은 기다렸다. 그러나 정오가 지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울은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여, 입을 열었다.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가져오너라!”

  그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의 집례를 자신이 직접 수행했다. 그렇게 희생제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나타났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내 밑의 군대는 줄어드는데 제사장께서는 온다고 한 때에 오시지 않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블레셋 사람이 나를 치러 곧 길갈로 올라올 텐데, 나는 아직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지도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직접 나서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셨습니다. 왕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약속을 지켰다면, 지금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의 왕권을 영원토록 견고하게 다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권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왕을 대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이 모두가 왕이 여호와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치고, 사무엘은 길갈을 떠났다. 사울은 자기 곁에 남아 있던 자들 육백 명을 이끌고 베냐민 기브아로 출발했다. 비탈진 산길을 등정하여 요나단이 주둔해 있는 게바까지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그가 진지로 들어서자, 요나단이 그를 반기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아버지.”

  “그래, 지금 상황은 어떠하냐?”

  “예, 어제 시각으로 벳아웬 동쪽 믹마스에 적의 본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규모가 작은 세 부대가 오브라로 향하는 길목과 벳호론으로 가는 길에 진 치고 있고, 광야 쪽 스보임 골짜기를 바라보는 경계의 길에 배치해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의 약탈과 파괴 행위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당장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사울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한동안 고심하였다.

  “아니다. 좀 더 기다려보자.”

  “무슨 계책이 있으신 겁니까?”

  “계책? 그런 게 무슨 소용 있겠느냐, 여호와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우리에겐 아무 승산이 없다. 피곤하구나. 난 좀 쉬어야겠다.”

  사울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적당한 곳이 있는지를 둘러보았다. 그는 타작마당의 석류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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