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빛바랜 전도 방식

이원범 2020. 2. 20. 10:04

토요일 같은 날 사람들이 잘 오가는 길목에는 교회분들이 전도하러 나온 모습을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 이름과 전도 문구가 적힌 띠를 두르고서 차나 소소한 간식을 나누며 예수님을 전하지요. 부드러운 인사와 함께 미소로 권할 때면 꽤 민망해져서 거절하려야 쉽지 않습니다. 이미 믿고 있는 저로선 받으면서 미안하고, 녹록지 않은 일에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전도는 그런 거리 전도를 주로 했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전도 방식이 그리 다양하진 않으니까요.

혹시 공감하실지, 솔직히 저는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들인 수고나 시간에 비해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반응이 좋았어도 실제로 교회에 나오는 경우는 소수이고 그마저 꾸준히 나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치 신세 갚으려고 얼굴을 비춰준다는 느낌 정도였죠. 그런 점에서 참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그런 전도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과거 세례 요한이나 사도들에겐 대단한 권위가 있었는데, 오늘날의 전도는 영 시원치가 못합니다. 그때 그 시절은 전도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 같네요.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신을 모두 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언약을 파기한 대가로 큰 고난을 치렀던 그들로선 많이 변화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대부분 형식에 치우쳐 있었고,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유대 사회를 깨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그의 외침은 사자가 포효하는 것 같은 위엄차고 살벌한 메시지였습니다. 숨은 죄악과 더러움, 위선과 형식에 매인 신앙 행태를 인정사정 보지 않고 꾸짖었으니까요.

비열하고 악한 짓을 일삼던 자들에게는 "이 독사의 새끼들아!" 하고 욕을 내질렀습니다. 거칠고 듣기 거북한 질타가 섞인 메시지였지만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자신들 속에 거하는 죄를 깨닫고 엎드려 회개하였습니다. 이전엔 어두운 길에서 헤매던 자들인데, 이제 눈이 밝아져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사망 권세를 제압하고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사도들도 주님으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전달받아 같은 사역을 펼쳤습니다. 죄와 어두움은 질병과 사망과 억압으로 본연의 힘과 권세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보다 강하신 하나님의 권능 앞에 철저히 파괴되고 주님의 발아래 굴복되었습니다.

발길이 닿는 곳으로 나아간 주의 종들의 전도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며 지형을 바꿔놓듯, 그들은 가는 곳마다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딘가에선 일어날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교회나 전도 행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괴리가 너무 심해 어설퍼 보이고 이게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수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퇴보한 측면도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초대교회로부터 전해진 가르침이 고스란히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워버렸습니다. 현재 우리가 하는 전도에서 별 효력이 안 나타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델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 사도들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전도의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내기 위함이며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주의 귀한 종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그대로 수행하였고 어둠에 갇힌 자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해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열매들이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택함 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다만 무턱대고 나서기보다 하늘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입고 성령께 인도함을 받으며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전도에 나서는 건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준비된 종에게는 은사가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처럼 사람들이 지은 죄를 깨닫고 가르쳐 주려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영분별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처럼 병든 자들을 고치려면 '병고침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귀신 들린 자, 억눌린 자, 어둠에 묶인 자들을 풀어주려면 '영분별의 은사'와 '능력행함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어둠의 권세에서 택한 백성을 구원해 내는 일이기에 이러한 은사들이 필요하며 결코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 신학자나 목회자는 은사를 부인하며 합리적인 이성에 입각해 영적 사역을 배척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은사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거보다 죄악이 만연된 이 시대에 악한 세력은 성도를 괴롭히며 교회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부터 은사와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어둠이 짙은 시기일수록 강력한 능력으로 무장한 주의 종들이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 세대와 오는 세대에는 이전 세대보다 더욱 강한 능력 있는 주의 종들이 많이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시대가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부름 받은 주의 종들은 사람의 지혜나 힘을 내려놓고, 성령님과 함께 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그분의 능력과 은사로 모든 일을 수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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