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성화로 나아가는 길

이원범 2020. 2. 20. 10:02

요즘 어떻게 잘 지내시나요? 좋지 않은 소식이 많이 들려서 시원한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네요. 만약 곤란한 처지에 놓였어도 실망하지 말고 안정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적으로 잘나가고 하는 일마다 잘되면 좋은 점도 많겠지만 놓치고 마는 것이 있으니까요. 살다가 험한 일을 겪고 극심한 난관에 부닥칠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았다면 이번엔 내가 걸었던 길을 살피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운수를, 어떤 이는 전생을 운운하기도 합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확인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랜 사색이든, 현인과의 대화를 통해서든 말이지요. 어느 정도라면 가능해도 모든 의문이 풀릴 것 같지는 않네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높음에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인간과 격이 다르십니다. 우리로선 도저히 이르지 못할 주권적인 영역이 존재합니다. 다만 성령님께서 우리 이성에 빛을 비춰주시면 일부라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을 향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다면 어디에서도 답을 얻지 못합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악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택하신 자녀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사랑이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애틋한 감정입니다. 만나서 즐거운 교제를 나누고 싶은 감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이 다른 것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의롭지 않습니다. 양심상 선하다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지는 분명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부패해서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간과해 주시기 때문에 의롭다 인정은 받습니다(롬 3:24). 법정적 의미로 의롭다 여김을 얻습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의 삶은 거룩하지 않고 의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가 성화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이후 우리의 삶은 성화 단계에 들어갑니다. 성화는 우리의 몸이 죽어서 영화 상태에 이를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 땅의 삶이 성화를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처음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였습니다. 산에 오르셔서 팔복이나 율법에 관하여 가르치실 때 요구하시는 바가 상당했습니다. 성화를 이루지 못하면 감당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당연한 것이 말씀을 듣던 자들은 거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어서도 천국에서 하나님을 섬길 자들입니다. 천국에서 거룩하게 살기 위해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혹시 너무 어렵게 느껴져 곤란한 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 조급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이 있듯, 성화는 마라톤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달리려고 하면 금방 지칩니다. 자기 수준에 맞게 페이스를 유지해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점은 마라톤은 혼자와의 싸움이지만 성화는 성령님과 내가 함께 달리는 경주입니다. 성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님과 함께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어야 가능합니다.

그럼 성화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회개 기도입니다. 다른 곳에선 회개에 대해 말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는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성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화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본받고, 내적으로 성숙해지며, 경건한 삶을 살고, 온유한 인품을 나타내게 됨을 의미합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성화는 성령님과 함께 이루어 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죄악을 일깨우고 근심케 하실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죄를 자백하여 용서를 구하여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대로 우리가 회개한 죄에 대해서는 사함을 입고 깨끗하게 됩니다. 그러니 회개에 대해 간과하고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거룩한 분이시기에 더러운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속에 죄가 많으면 충만히 거하실 수 없습니다. 회개는 반드시 해야 할 것이며 소홀히 여겨선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사람에게 말씀과 경건의 훈련이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남아있기에 삶과 성품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이후 고난을 통해서 시험과 훈련을 받게 됩니다(롬 5:3, 4). 주된 의미는 연단을 받음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해가며 인내의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고난을 받아도 연단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죗값을 치르기 위해 받는 것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지요. 힘들게 고통받은 만큼 죄가 사해집니다.

이처럼 고난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서 매우 오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우연히 찾아오는 고난은 없으며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언젠가 고난의 의미를 깨닫는 때가 올 것입니다. 빠르면 현세에서도 말입니다. 그땐 누구라도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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