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67장 도망자

이원범 2021. 6. 24. 12:15

  다윗은 행여나 가족에게 누가 될까 염려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베냐민 놉으로 갔다. 그곳은 다윗이 여호와의 뜻을 묻기 위해 자주 찾았던 곳이며, 그에게 있어 가장 의지가 될 만한 장소였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수하들과 함께 오지 않은 것이 의아스러웠고 불안감이 찾아들었다.

  “아무 일행도 없이 혼자 오다니 무슨 일 있습니까?”

  다윗은 사울에게서 도망치는 자신의 상황을 밝힐 수 없었기에, 적당한 말을 찾아 둘러대었다.

  “주군께서 제게 임무를 맡기시면서 이 일을 비밀로 부치셨습니다. 수하들 하고는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곳에 혹시 먹을 것이 있습니까? 빵 다섯 덩이 정도 주실 수 있는지요?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뭐든 괜찮습니다!”

  “보통 빵은 없고 거룩한 빵만 있습니다. 당신의 수하들이 며칠 사이 여자와 잠자리한 적이 없다면, 가져가도 좋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임무를 수행할 때면, 수하들이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제가 출정할 때에 이미 부하들의 몸은 정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쯤은 그들의 몸이 얼마나 더 정결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아히멜렉이 거룩한 빵을 가지러 성소로 들어간 사이에 다윗은 사울의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도엑이 자신과 같은 곳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에돔 출신이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간악한 자였다. 아히멜렉은 성소에 진열하였던 빵들을 자루에 담아 다윗에게 내주었다. 다윗은 그것을 받으면서 감격하여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고, 한 가지 더 물었다.

  “제사장님, 혹시나 해서 여쭤봅니다만 이곳이 창이나 칼이 있을까요? 왕의 명령이 너무 급해서 무기를 챙겨 올 겨를이 없었습니다.”

  “음, 칼이라면 당신이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있지요! 그걸 어디에 두었더라.”

  아히멜렉은 턱을 감싸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 에봇 뒤에 천으로 싸여 있습니다. 갖고 싶으면 가져가십시오. 그것 말고는 없을 겁니다.”

  “그만한 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을 저에게 주십시오!”

  아히멜렉은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나와 다윗에게 건네주었다. 여러 해 방치되었던 탓에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지만, 어느 무기에 비할 바 없는 훌륭한 검이었다. 다윗은 감사의 인사로 답례하고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도엑은 무심한 척, 자신의 서원을 이행하고 있었다.

  사울은 이스라엘 각 지파와 성읍 지도자들에게 다윗을 발견하는 즉시 상부에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를 무시할 시에는 즉시 응징을 가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다윗과 그의 수하들은 안전히 머무를 만한 곳이 없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유다 경내를 유랑하였다. 그들이 유다 아둘람의 석회암 동굴에 피난해 있을 때, 다윗의 집안과 관계된 사람들이 그와 합류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는 난민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장정들만 계수하여 4백 명 가량이 운집하였고, 다윗은 지도자가 되었다. 다윗이 독자적인 세력을 키움에 따라, 사울은 그가 반란을 주도해 나라를 전복시킬 거라는 망상에 휩싸였다. 그리하여 신하들을 불러 놓고 분통을 터뜨렸다.

  “너희들, 잘 들어라! 행여 이새의 아들에게 너희 미래를 의탁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라. 그가 너희에게 좋은 땅을 내주고 요직에 앉혀 줄 주를 아느냐? 너희가 나를 뒤엎으려고 작당하는 거 다 알고 있다.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내통하고 있는데도, 내게 고하는 자가 한 놈도 없고, 또 내 아들이 오늘 내 신복을 부추겨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시켰는데, 너희 중에 내개 고하는 자가 어찌 하나도 없느냐!”

  그때 에돔 사람 도엑이 나서서 말했다.

  “전하, 제가 놉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왔는데, 거기서 이새의 아들이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는 것을 보았나이다.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묻고, 그에게 먹을 것을 주며 골리앗의 칼도 주었나이다.”

  “그래, 잘 말해주었다.”

  “여봐라,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집안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제사장 아히멜렉을 비롯하여 놉의 제사장 팔십 오명이 사울의 부름을 받아 관청 안으로 들어섰다.

  “아히둡의 아들은 들어라!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한패가 되어 나를 대적하였느냐? 어찌하여 그에게 빵과 칼을 주며, 그를 위해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였느냐! 그는 반역자인데 어찌 그에게 가담하였느냐?”

  아히멜렉이 대답하였다.

  “전하, 왕의 수하에 왕의 사위이자 경호대 대장인 다윗만큼 충직한 신하가 없고, 그보다 훌륭한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구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 아닙니다. 부디 저희 집안에 죄를 씌우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반역자’라 하시는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옵니다.”

  “아히멜렉아, 너는 죽어 마당하다! 너와 네 집안이 죽어 마땅하도다. 저 자들은 다윗과 한편이다. 다윗이 나를 피하여 달아나는 줄 알면서도 내게 알리지 않았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라!”

  수하들은 눈만 크게 뜨고,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지만 제사장들에게 손을 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왕이 도엑에게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에돔 사람 도엑이 앞장서서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 여든다섯 명을 쳐서 죽였다. 이어서 사울은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에까지 학살의 손길을 뻗었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아기, 소와 나귀와 양 가리지 않고 모조리 도육했다.

  아히둡의 손자이며 아히멜렉의 아들인 아비아달만이 겨우 목숨을 건져 다윗에게로 도망쳐 왔다. 그는 두려움과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아히멜렉과 제사장들과 놉에서 벌어진 잔인한 만행에 대해 모두 전해 주었다. 그가 겪은 고초의 원인을 제공한 다윗은 그를 바라보기도 민망하였다. 다윗은 그를 안고 함께 울었으며 그를 무리 안으로 영접하였다. 이 후로 다윗과 그의 추종세력은 인적이 드문 유다 변경의 광야나 산지에 은신하여 지냈다. 하지만 백성들의 밀고로 위치가 발각이 되어, 번번이 사울의 추격을 받았다. 다윗은 추격에 대비하여 늘 신경을 곤두세우며 도피 생활을 이어갔고, 오랜 연단 가운데 젊은 이십 대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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