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68장 블레셋으로 망명하다

이원범 2021. 6. 24. 12:23

  사울이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동안, 노쇠한 사무엘이 생을 마감하였다.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참 지도자를 잃은 슬픔으로 애곡하며 장례식을 치렀다. 다윗은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해도 결코 잡히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마다, 여호와께서 그를 구원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도피 생활로 인해, 그는 좌절 가운데 점차 믿음을 잃게 되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에게 투항하여 그의 산하로 들어갔다. 아기스는 다윗의 요구에 따라 유다 변방의 시글락을 내주었다. 다윗과 그의 추종세력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터전을 얻게 되었지만, 그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다윗은 본의 아니게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많은 고충이 뒤따랐다. 그는 그술 족, 기르스 족, 아말렉 족 등 네게브 사막 지대에 사는 유대의 대적들과 싸우면서도 아기스에게는 유다 백성과 싸운 것으로 거짓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생존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한지도 일 년 넉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아기스는 블레셋 영주들과 회동을 마치고 돌아와, 다윗을 불러 말했다.

  “어제 연합 회의에서 이스라엘 침공이 결의되었네. 동족과 싸워야 하는 것이 유감이네만, 자네도 나와 함께 진격할 것이오.”

  다윗은 심장이 멎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예, 영주님. 이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직접 보시게 될 것입니다.”

  시원스러운 대답과 달리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타국에 와서 그에게 신세진 일이 많은 만큼 결코 거절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아기스는 다윗의 대답이 만족스러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자네가 있어서 참 든든하구만, 이번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우게나, 그럼 자네를 내 직속 호위대장으로 삼아 주겠네.”

  “대단히 큰 영광입니다.”

  수 일후,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은 휘하의 병사들을 이끌고 가드로 출발하였다. 동족 이스라엘과 칼을 맞대어하는 상황으로 인해 그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한 자신의 불충을 탄식하며 여호와께 구원을 간구하였다. 다윗의 부대는 가드에서 아기스와 합류하여 아벡으로 진군하였다.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다섯 성읍으로부터 출진한 블레셋 군세가 아벡에 집결하였다. 블레셋 영주들은 아기스와 함께 등장한 다윗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였다. 그들은 무패의 명장으로 소문난 다윗이, 자신들과 함께 싸워준다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를 환영하였다. 아벡에 집결한 블레셋 군세는 곧이어 수넴으로 진군을 시작하였다.

  블레셋 영주들은 적진으로 다가서면서, 아기스 산하의 다윗 부대가 신경에 거슬렸다. 그들은 아기스에게 항의했다.

  “아기스, 저 히브리인들과 함께 싸우는 것은 뭔가 탐탁지 않소!”

  “걱정 마시오. 그가 한때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였지만 그동안 나와 함께 생활하였소. 나는 그가 사울에게서 망명한 날부터 지금까지, 수상쩍거나 못마땅한 점을 하나도 보지 못했소.”

  블레셋 영주들은 강하게 항의하며 아기스를 책망하였다.

  “하지만 그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불리는 그 다윗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런 자가 우리와 함께 전쟁에 나간단 말이오!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를 지금 당장 돌려보내십시오!”

  “그렇습니다. 저 자는 분명히 우리를 배반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설 겁니다! 우리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이 때야 말로, 제 주인과 화해할 절호의 기회 아닙니까?”

  하는 수 없이 아기스는 다윗을 돌려보낼 것이라 말하며 흥분한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는 말고삐를 돌려 후위에 따라오고 있는 다윗에게로 다가가서 말했다.

  “다윗, 할 얘기가 있네.”

  “예, 무엇이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너는 나와 함께 일하면서 모든 면에서 탁월했고 처신하는 방식도 나무랄 데가 없었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너는 지금까지 내 믿음직한 협력자였어. 그러나 다른 영주들이 그렇게 보지 않는구나. 그러니 이제 떠나는 것이 좋겠소. 굳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지 않나.”

  “저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습니까, 제가 주군과 동행한 날부터 지금까지 무엇 하나라도 불편하게 해 드린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왜 내 주인이신 주군의 적들과 싸울 수 없습니까?”

  “자네가 여호와의 사자로서 흠이 없는 자임을 내가 잘 알지. 허나 다른 영주들이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갈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오고 있으니 나도 별 수 없구나.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예······.”

  다윗으로선 바라마지 않을 상황이었고 여호와의 돌보심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오늘은 늦었으니, 진중에서 푹 쉬고 내일 아침,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도록 해라.”

  이 말을 하고 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으나, 다윗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주님을 묵상하였다. 그의 마음 가운데 찬양이 흘러넘쳤다.


이미지 by Sweet Publishing

'언약 내러티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장 밀약  (0) 2021.06.24
69장 사울이 죽다  (0) 2021.06.24
67장 도망자  (0) 2021.06.24
66장 슬픈 작별  (0) 2021.06.24
65장 시기질투  (0) 202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