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86장 여호와께서 일하시다

이원범 2021. 6. 25. 12:19

  포위가 지속되고 있던 어느 날, 아시리아의 최고 지휘관 세 사람이 성문 가까이로 나아와, 큰소리로 왕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왕궁 책임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 궁중 사관 요아가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셋째 지휘관인 랍사게가 아시리아 왕을 대변하여 말을 전했다.

  “히스기야에게 전하여라. 위대하신 왕 산헤립의 말씀이시다. 전쟁도 할 줄 모르고, 싸울 병사도 없는 네가 뭘 믿고 내게 대항하는 거냐? 누구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것이냐? 이집트가 와서 도와주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겠느냐? 성 안에서 냉큼 나와라! 이곳에 나와서 내 주인 아시리아 왕과 겨뤄 보라. 내가 너에게 말 이천 필을 준다고 한들, 네가 그 위에 탈 사람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 네가 내 주인의 부하들 가운데서 하찮은 병사 하나라도 물리칠 수 있겠느냐? 더 이상 허황된 꿈은 다 버려라! 그러면서도 병거와 기병의 지원을 받으려고 이집트를 의존하느냐? 이제 생각하여 보아라. 내가 이곳을 쳐서 멸망시키려고 오면서, 어찌 너희가 섬기는 주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왔겠느냐? 너희의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 땅을 치러 올라가서, 그곳을 멸망시키라고, 나에게 친히 이르셨다.”

  궁내대신들이 랍사게에게 항의하였다.

  “하실 말씀이라면, 아람어로 말씀해 주시지요. 저희는 아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제발 히브리 말로 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기서 이렇게 큰 목소리로 말씀하시면, 저 성벽 위에 있는 자들까지도 다 듣습니다.”

  “이것은 너희의 주인과 너희에게만 전하는 사적인 전갈이 아니다!”

  랍사게가 매서운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봤다.

  “누구나 이 말을 들어야 한다. 너희가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 백성들은 너희와 함께 자기 똥을 먹고 자기 오줌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더니 그는 성벽 쪽으로 더 다가가 왕의 서장을 펼쳐 들고 크게 히브리 말로 낭독했다.

  “위대한 왕이신 산헤립의 말씀을 잘 들어라. 히스기야에게 속지 마라. 그는 너희를 구원할 수 없다. 그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마라. 그리고 내 말을 들어라. 내 통치를 받아들여 행복한 삶을 살아라. 내가 너희 모두에게 각자의 토지와 밭과 우물을 보장하겠다! 내가 너희를 지금보다 훨씬 기름진 땅, 곡식과 포도주와 빵과 포도원과 올리브 과수원과 꿀의 땅으로 데려다주겠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그러니 제대로 사는 것처럼 살아 봐라! 절대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마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하는 그의 거짓말에 귀 기울이지 마라.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한 사람이라도 자기 백성을 구해 낸 신이 있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지금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 헤나, 아와의 신들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사마리아, 그들의 신들이 그들을 구원했느냐? 어디서든 나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한 신이 있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여호와가 내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백성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궁내대신들은 비탄에 잠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엘리아김이 엎드리며 양손으로 자신의 옷을 잡아 찢고 구슬프게 탄식하였다.

  “이제 우리 유다는 아시리아의 손에 완전히 짓밟히게 생겼소! 이 일을 어찌할꼬.”

  셉나가 그를 한쪽에서 부축하였다.

  “전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서둘러 돌아가십시다.”

  그들은 왕궁으로 돌아와서, 랍사게가 전한 모든 말을 히스기야에게 보고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모욕적인 언사에 분개하며, 옷을 잡아 찢었다. 그러나 약소국인 유다의 입장에선 모욕을 받아도 그것을 되갚기란 불가능했다. 히스기야는 홀로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여호와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모든 걸 주께 토로하며 여호와의 도우심을 간절히 부르짖었다. 한참을 기도하고 나니, 그의 마음 가운데 여호와의 평안이 임하였다. 분명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여호와께서 유다를 보호 하시리라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그때 아시리아 왕은 립나와 교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에티오피아 왕 디르하가가 그를 대적하러 진군해 왔다. 그는 난항을 겪게 되자, 예루살렘 공략을 서둘러 완결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냈다.

너는 순진하게 믿는다만, 네 하나님에게 속지 마라.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왕에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 약속에 휘둘리지 마라. 머리를 좀 굴려 봐라! 아시리아 왕이 모든 나라에게 한 일을 둘러보란 말이다. 하나씩 줄줄이 짓밟히고 말았다. 그런데 너라고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고산, 하란, 레셉, 들라살의 에덴 민족을 보아라. 이미 폐허가 되었다. 내 선왕들에게 멸망당했다. 세상의 어느 신이 자기 백성을 구했단 말이냐? 주위를 둘러봐라. 하맛 왕, 아르밧 왕, 스발와임 성읍의 왕, 헤나 왕, 이와 왕,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들에게 무엇이 남았는 줄 아니냐? 오직 뼈뿐이다.

  편지를 받아 읽은 히스기야는 분개하여 주먹을 움켜쥐었다. 산헤립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히스기야의 믿음을 꺾어 놓으려는 심산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히스기야는 편지를 손에 들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편지를 무릎 앞에 펼쳐 놓고 기도했다. 참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여호와는 진정 여호와만을 의뢰하는 히스기야의 변화된 마음을 보시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말씀을 들려주셨다.

네가 아시리아 왕 산헤립의 일로 내게 기도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 산헤립에 대한 나의 응답은 이러하다. 처녀 달 시온이 너를 잔뜩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보기에 너는 찌끼에 지나지 않는다. 네가 누구를 모욕했느냐? 네가 누구를 욕했느냐? 네가 누구 앞에서 으스댔느냐?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다! 너는 네 심부름꾼들을 보내어 주를 모욕했다. 너는 자랑했다. ‘나는 전차부대로 가장 높은 산들, 눈 덮인 레바논 고산들에 올랐다! 그곳의 거대한 백향목들을 베고 수려한 소나무들을 베어 넘어뜨렸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절경의 깊은 숲에 가 보았다. 나는 먼 곳에 우물을 파서 다른 나라의 물을 마셨다. 이집트의 강들을 맨발로 첨벙첨벙 걸었다.’

이 모든 일 뒤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너는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느냐? 아주 먼 옛날 내가 계획을 세웠고 이제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내가 너를 심판 날의 무기로 사용하여 교만한 성읍들을 잔해 더미로 만들었고, 그곳 백성을 낙담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잡초처럼 쓸모없고 풀처럼 약하며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힘을 잃었다. 나는 네가 언제 앉고, 언제 오며, 언제 가는지를 다 안다. 네가 나에게 화내며 대든 일도 하나하나 유심히 보았다. 너의 그 성미 때문에, 신성을 모독한 몹쓸 성미 때문에 이제 내가 네 코에 갈고리를 꿰고 네 입에 재갈을 물려서 네가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낼 것이다.

히스기야야, 너에게 증거를 보이겠다. 백성이 금년에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고, 내년에도 들에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내후년에는 백성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둘 것이며, 포도밭을 가꾸어서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다. 유다 사람들 가운데서 환난을 피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 땅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오고, 환난을 피한 사람들이 시온 산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 주민들은 다윗 성을 에워싼 아시리아군의 진에 시체들이 무수히 널브러져 있음을 보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산헤립 휘하의 18만 대군을 밤 사이 진멸하신 것이다. 히스기야는 병사 한 명 내보내지 않고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완전한 승리를 얻었다. 아시리아 대군을 상대로 유다 왕국이 거둔 기적 같은 승전보는 삽시간에 주변 열국으로 퍼져나갔다. 유다의 국가적 위상은 드높게 치솟았고, 히스기야는 열국으로부터 많은 예물과 존귀를 받게 되었다. 그와 반면에 산헤립은 홀로 살아남아서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등 뒤에서 자기 아들이 찌른 칼에 맞아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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