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84장 아시리아의 발흥

이원범 2021. 6. 25. 11:51

  예후는 여호와께서 분부하신 명령들을 모두 수행하므로 여호와의 진노를 풀어 드렸으며, 아합 가문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바알 종교도 철저히 파괴시켰다. 다만 그의 개혁 활동들은 여호와를 경외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정권 안정을 원한 것이었기에 매우 모자람이 있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 곧 이스라엘을 죄악 된 삶으로 끌어들인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단과 베델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므로 여호와께 대해 지켜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한편 남유다 백성은 여호사밧이 아합과 화친한 이후로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였다. 죽은 아하시야 왕의 모친 아달랴가 왕국 내에 바알 신앙을 적극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유다 왕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여호와와의 언약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분투하였으나, 우상주의에 빠진 대신들이 사사건건 방해 공작을 펼치며 나라를 우상숭배로 타락하게 만들었다.

  여호와는 또다시 악에 물들어 가는 이스라엘로 인해 가슴이 타들어가듯 심히 괴로우셨다. 그로 인해 여호와의 징계가 남북 왕국에 임하게 되었다. 여호와는 아람 왕 하사엘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셨는데, 특히 북왕국의 피해가 컸다. 그들은 북쪽 바산 지방을 점거하며 백성들을 유린하더니,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남쪽 아르논 강의 모압 국경선에 이르는 길르앗 지방 전역을 정복하였다. 북왕국의 기세는 급속히 약해져 왕국의 존립조차 위태롭게 되었다. 예후는 아람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가인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 3세에게 신종을 약조하고 그의 봉신이 되었다. 그러나 보호를 받는 대가는 컸다. 매년 바쳐야 하는 막대한 조공으로 인해 북왕국의 백성은 고통 속에 신음하였다. 남유다도 심각한 위협을 맞이하였다. 아람의 군대는 유다 남서부의 가드를 침략해 들어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격해왔다. 유다의 무관들은 그들에게 패하여 많이 죽었다. 아람을 대항해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요아스는 선왕들이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린 보물들을 모두 하사엘에게 바치므로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근동의 정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대에서 이르면서 아람의 힘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아람을 귀속시킨 아시리아마저 내외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남북 왕국은 반사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 무렵 남유다는 요아스의 손자 웃시야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웃시야는 아버지 아마샤를 본받아, 여호와께 순종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다. 여호와께서 그의 통치하에 나라를 강성하게 만드시니, 적대관계에 있던 에돔, 블레셋, 아랍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쳤다. 유다 왕국은 이집트 변방까지 영토를 확장시키며 명성을 날렸다.

  같은 시기,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도 아람을 몰아내고 북쪽 끝의 르보하맛까지 그리고 남쪽의 사해까지 땅을 되찾았다. 두 나라는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였고, 주요 교역로를 통한 대외 무역업을 활발히 진행하는 가운데 옛 영화의 때를 떠올릴 만한 부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부흥은 지배계층을 비롯한 상류 시민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고, 일반 서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더욱 가혹한 운명에 처해졌다. 부자들은 부정직한 관행들이 도처에서 기승을 부렸지만, 재판관들은 돈으로 매수되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은 구제받을 길이 없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아는 바른 지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여러 신들 중 하나라고 보았다. 당시 사회는 이방 풍습에 물든 종교적 복합주의로 말미암아 순수한 형태의 여호와 신앙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방신을 가증하게 섬기는 죄악이 관영하였다. 여호와의 고민은 깊어져가고 있었다. 징계를 내려도 소용이 없고 축복을 주어도 타락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죄에 따른 보응으로 그들은 큰 징벌을 당해야만 했지만, 여호와는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들을 버리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아모스와 호세아, 이사야와 미가 등 그분의 사자들을 북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보내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게 하셨다. 그들은 여호와의 아픈 마음을 통감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말씀 사역을 행했다. 그들의 지속적인 사역으로, 회개하며 주께 돌아오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 수는 매우 소수에 불과하였고, 대다수 백성들은 죄에 대한 인식 없이 부패한 삶을 지속하였다. 이렇게까지 불신앙이 팽배해지니, 그에 따른 여호와의 징벌을 결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동방의 아시리아는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치세에 이르러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고 세계적인 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들불처럼 성난 기세로 뻗어 나가는 아시리아 군대는 근동 지역의 온 나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반면에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 이후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분과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서서히 내리막 길을 걷고 있었다. 북왕국의 베가 왕은 아시리아의 공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아람 왕 르신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대제국 아시리아 앞에서 그들은 어린아이와 다름없이 무력했다. 아시리아는 먼저 아람을 쳐서 점령하였고 그다음 북왕국을 침략해 왔다. 이욘, 아벨벳마아가, 야노아, 게데스, 하솔, 길르앗, 갈릴리와 납달리가 점령당하고 그곳 주민들은 포로가 되었다.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베가 왕은 호세아의 반역으로 살해당하고 만다. 정권을 잡은 호세아는 아시리아에게 신종을 약조함으로써 당장의 멸망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 정하신 여호와의 뜻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호세아 재위 7년,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진격해 들어왔다. 수도 사마리아는 그들에게 에워싸인 후 3년 만에 함락되어 적의 손에 불살라졌다. 빈민한 자들을 제외한 남은 백성들은 아시리아 변방 지역인 할라, 하볼 강가의 고산, 메디아인의 여러 성읍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다른 속주로부터 이주해 온 이방민들이 사마리아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는 속주에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한 아시리아의 제국적 정책이었다. 이로써 북왕국은 아시리아에 의해 완전히 패망하였다. 다윗 왕국이 둘로 분열된 지 2백 년 하고도 십여 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패망한 북왕국의 백성들은 타국으로 끌려가 수많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어 슬피 울었다. 하지만 그들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은 아니었다. 여호와는 처음 그들과 맺으신 약속의 끈을 놓지 않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미지 by Sweet Publishing

'언약 내러티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86장 여호와께서 일하시다  (0) 2021.06.25
85장 크나큰 실수  (0) 2021.06.25
83장 숙청  (0) 2021.06.25
82장 미가야  (0) 2021.06.25
81장 거짓 예언자들  (0) 202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