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왕국이 패망할 당시, 남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다. 그는 조상 다윗을 그대로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의로운 자였다. 남유다는 아하스가 재위할 무렵부터 아시리아에게 신종을 맹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리아의 군대가 쳐들어올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전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곧 그들이 유다를 침공해 들어오리란 사실은 자명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산재해 있는 경쟁 세력들을 모두 무찌르기까지의 시간이 유예기간으로 남았다. 히스기야는 아시리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로, 시돈과 동맹을 맺고, 아시리아에 보내던 조공을 보류하였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외세에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결심과 함께, 아시리아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곧이어 수도 예루살렘의 방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서쪽 성벽을 두껍게 보강하며, 원활한 물 공급을 위해 긴 수로와 저수지 공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아시리아의 포위 군대가 물 자원을 쉽게 구하지 못하도록 성 밖에 흐르는 물 근원을 돌려놓았다.
히스기야 재위 14년,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 왕국을 침범해 들어왔다. 유다의 군대는 막강한 아시리아군에 의해 격파당하고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 전역을 빼앗겨 버렸다. 천혜의 요새지인 다윗 성은 쉽게 함락될 만한 성이 아니었지만, 이런 다윗 성도 오랜 포위 공격에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히스기야는 유다에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성 안에 비축해 놓은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사정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는 자조 섞인 말투로 대신들에게 말했다.
“더 이상 저들의 공세를 막아내기란 무리인 거 같소. 그대들 생각은 어떻시오. 항복을 해도 되겠는가?”
그들은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잠시 후, 대신들 중에 한 명이 발을 한 발짝 내딛고, 말을 꺼냈다.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장기간 걸친 포위는 아시리아의 장기 중에 하나이지 않습니까, 이대로 버텨봐야 저희도 북왕국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 자명한 줄 아나이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한 명이 발언하였다.
“안됩니다, 전하. 잔혹하기로 소문난 아시리아가 주군께 어떤 해악을 끼칠지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부디 옥체를 보존하셔야 하옵니다.”
“나를 걱정해 주어 하는 말은 고맙네. 하지만 이대로 있어도 굶어 죽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전하, 그러하시다면 일단 여호와의 뜻을 여쭈어 보시는 게······.”
“주님께서도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지 않나, 어서 아시리아로 사자를 보내도록 하세.”
히스기야는 라기스에 머물고 있는 아시리아 왕에게 사자를 보냈다. 여호와의 뜻을 의뢰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얼마 후, 라기스 성에서 대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산헤립에게 보고를 올렸다.
“폐하, 예루살렘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의 전언이라고 합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흥! 들라하게.”
예루살렘의 사자는 라기스 성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성의 위용과 늘어선 호위대와 대신들의 규모에 압도되었다. 그는 왕 앞에 무릎을 꿇고 격식에 맞추어 큰 절을 올렸다.
“이렇게 알현을 허락해주신 것 감사드리옵니다. 폐하께서는 만수무강하옵소서.”
“무슨 일로 내게 온건가?”
“송구스럽사오나, 내 주께 한 말씀 올려드릴 수 있게 허락하소서. 제 주인 히스기야는 폐하께 등을 돌린 자신의 실수에 대해 밤이고 낮이고 심히 통탄해하고 계시답니다. 제 주인을 대신하여 용서를 구하고자 하나이다. 또한 저희 예루살렘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막바지에 달하였습니다. 만약 군대를 물러나게 해 주신다면 폐하께서 무엇을 원하시든 그것을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하! 배반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하다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군. 내가 왜 그를 살려 주어야 하지?”
“대단히 송구하옵니다. 부디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저희 유다는 아시리아의 종이 될 것입니다. 얼마를 요구하시든 저희는 다 감당할 것이옵니다.”
“좋다, 이달 말까지 은 3백 달란트와 금 3십 달란트를 지불하면 전부 없던 일로 해주지.”
산헤립은 이렇게 말하였어도 공격을 취소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알겠사옵니다. 저희 주군께서도 기뻐하시며 흔쾌히 수락하시겠지요.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사자는 히스기야에게로 돌아가 모든 내용을 전달하였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것도 감수해야 하는 일······. 왕궁에 재정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라. 은 3백 달란트, 금 3십 달란트를 당장 만들어야 한다.”
“주군, 그것은 터무니없는 요구이옵니다. 애초에 그들은 저희를 살려둘 마음이 없던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럴 리 없네, 그만한 금액이면 저들도 만족하고 돌아갈 거라 생각하네.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우릴 멸하려 작정하신 게지.”
그리하여 대신들은 왕궁 창고와 성전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샅샅이 긁어모았다. 그렇지만 산헤립이 요구한 금액이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 문과 문기둥에 입힌 금까지 뜯어내어 대략 금액을 맞추었다. 히스기야는 그 모은 돈을 전부 산헤립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아시리아군은 약조한 것을 어기고, 포위를 속행하였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히스기야는 오열하며, 여호와 앞에 울부짖었다. 그제야 여호와를 의지하여 끝까지 항거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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