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는 병사들의 뒤를 밟아, 어느 저택 앞에 당도하였다. 이른 새벽이었음에도, 안뜰에는 등불이 켜져 있어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고 여러 경비들과 종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언듯 보아도, 유대에서 권력으로나 신분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집이었다.
여기까지 왔지만, 두 제자는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했다.
“으리으리한 건물이군.”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이에요. 예수님을 이곳으로 끌고 온 건, 아마도 억지 죄명을 뒤집어 씌워 로마에 고발하려는 심산일 거예요.”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을까?”
“제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여기서 잠시 기다려보세요.”
요한은 이 말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사이, 추위를 느낀 베드로는 불을 쬐려고 화로 근처 종들 곁에 가서 섰다. 그러자 그 집 하녀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베드로를 훑어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당신,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았어요?”
“무슨 소립니까! 나는 아니요.”
조금 있다가,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말했다. “너도 저들과 한패지?”
“이 사람아, 나는 아니라고.”
베드로는 너무 당황하여,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였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곧 요한이 와서 베드로를 불러, 두 사람은 함께 건물로 들어갔다. 넓은 회의실 안은 가득 들어찬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비좁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회의실 중앙에 얻어맞고 무릎 꿇리우신 주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맨 위 상석에 앉았고, 장로와 서기관들이 각자 좌석에 앉아 재판을 참관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재판이란 말은 듣기 좋은 허울일 뿐, 불법 집회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고소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교묘히 곡해하여 거짓 증언을 쏟아냈는데,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과 공모한 자들이었다. 예수께서 성전을 부순 다음에 다시 짓겠다고 위협하셨다는 등, 그들로부터 많은 고발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어느 것도 진실한 것으로 입증되지 못하였다. 더 이상 고소가 진전되지 않자, 안나스는 휴정을 선언하고 아침에 다시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예수께서는 결박당한 채, 대적자들의 놀림감이 되어 아침까지 심한 조롱을 당하셨다. 베드로와 요한은 차마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예수님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무력감이 그들을 덮쳐, 마음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때 어느 남자가 베드로를 보더니, 무언가 알아챈 듯이 단호히 말했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저 자와 함께 하던 자요! 딱봐도 갈릴리 사람이란 표가 나지 않습니까?”
그 남자의 말을 듣고, 주위에 있던 자들이 모두 베드로를 쳐다보았다. 경멸과 분노가 담긴 시선이었다.
“아니오! 난 아니오.”
그는 부인하였지만 불안한 낯빛이 진실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이봐요! 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수탉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주님이 계신 곳으로 눈을 돌렸다. 주님께서도 그 순간 베드로를 바라보고 계셨다. 곧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그의 머리에 스쳤다.
수탉이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주님께 너무도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하염없이 울며 애타게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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