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113장 불법 재판

이원범 2021. 6. 27. 10:03

  동틀 무렵,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일 모의를 마무리 짓고, 재판을 다시 진행하였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진실만을 말하라. 네가 메시아냐?”

  실내의 술렁이던 소리들이 사라지고, 모든 시선이 주님을 향해서 집중되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 대답하셨다.

  “내가 그렇다고 해도 너희는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물어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말은 이것이다.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편, 권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대제사장과 배심원들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심히 노하여 자기 옷을 찢고,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아니! 저런 말을 입에 담다니······.”

  “신성모독이요! 저 자를 죽여야 하오.”

  “그렇습니다. 죽여 마땅한 자입니다.”

  가야바가 모든 소리를 일축시키고, 다시 질문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한 네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냐?”

  “그렇다. 내가 그니라.”

  모인 종교 지도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합니까! 우리가 들은 것처럼, 이 자는 자기 입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였소.”

  “그는 사형이요, 사형!”

  그들은 단단히 화가 난 듯 흥분하였지만, 속으론 기뻐서 쾌재를 불렀다. 혐의가 입증되었으므로, 사형 집행을 위해서 로마로부터 승인을 얻는 일만 남았다. 당시 유대사회 최고의회였던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의 인준 하에 제한된 권한만 가지고 있었기에, 사형 집행과 같은 사법 처리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로마로부터 꼭 승인을 받아야 했다. 유대 백성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곧바로 예수님을 결박하여, 로마 총독부로 데려갔다. 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유대 전통에 따라, 대문 앞에서 시위하듯 자신들의 주장을 떠들어댔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다툼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아침부터 떠드는 소리에 귀가 거슬렸다.

  “무슨 일로 이렇게 소란을 부리는 거요? 제발 조용히 좀 하시오!”

  종교 지도자들이 그에게 탄원하였다.

  “총독님, 저희가 극악한 죄인을 데려왔습니다. 이 사람에게 십자가 형을 내려주시오!”

  “그가 무슨 죄를 지었소?”

  “이 자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총독님을 귀찮게 하겠습니까? 그는 우리의 법과 질서를 허문 자입니다. 또한 황제께 세금 바치는 것을 방해하였고, 스스로 메시아 왕이라 사칭하는 자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관저 내로 불러내어 질문하였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냐?”

  “그 말은 너 스스로 묻고자 하는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한 말이냐?”

  “내가 유대인인 줄 아느냐? 네가 메시아라 하는 자든 아니든 나는 관심이 없다만, 대체 무슨 범행을 저질렀길래 네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저러는 것이냐? 말해라! 네가 한 일이 뭣이냐?”

  “내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이뤄지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왕이 아니다. 나는 세상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다.”

  “그래서, 네가 왕이다 이 말이냐?”

  “네 말 그대로다. 나는 왕이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이 세상에 왔노라. 누구든지 진리에 마음이 있는 자, 조금이라도 진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

  “그 진리란 무엇이냐?”

  예수님은 묵묵부답이셨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만으로 사리를 판단하는 빌라도로서는 주님의 증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그는 예수께서 아무런 죄가 없으며 정치적으로 소란을 일으킬 위험 인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빌라도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소견을 그들에게 밝혔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였소.”

  그러나 무리는 더욱 거세게 반발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우레와 같은 소리로 외쳐댔다.

  빌라도는 무리를 향해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하지! 유월절에 죄수 한 명을 사면하는 관례가 있소. 여러분은 내가 어떤 죄수를 놓아주기 원하오? 바라바요? 아니면 예수요?”

  “이 자가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빌라도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무리로 인해 자괴감을 느끼며, 예수께 가혹한 채찍을 허용하였다.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몰골을 보게 되면, 그들도 분을 가라앉힐 것이라는 얕은 생각에서였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벗기고, 흉측한 뼈와 금속 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그분의 몸을 가격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신음하시다, 매질이 끝날 즈음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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