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언약적 관점으로 성경 읽기

이원범 2020. 2. 22. 10:01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룩한 데에는 책의 공로가 상당히 크다고 보는데요. 그만큼 책은 역사, 문화, 기술, 교육 등 온갖 분야를 망라하는 지식의 보고입니다. 또한 읽는 즐거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많은 책 중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가려내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분야별로 좋은 책을 추천할 만한 사람이 아닌지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경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하나의 책이 아니라 신·구약을 합하여 총 66권의 모음집이며, 40여 명의 저자가 참여했습니다. 기록시기는 계산하면 가장 이른 때부터 마치는 때까지 1600년이란 기간이 나옵니다. 여기에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얽힌 이야기, 법조문, 시, 체험기, 전기, 편지 등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 성경이 다른 책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인 책은 저자가 사람입니다. 성경도 저자가 사람입니다. 다만 성령께서 저자에게 감동하시어, 하나님께서 쓰고자 하신 뜻을 사람이 기록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진정한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증거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일관된 주제와 성격을 갖습니다. 그리고 각 권의 책이 모여서 전체적인 그림이 보여줍니다. 단순 요약하면, 잃어버린 백성을 찾으려고 먼 길을 여행하는 겸손한 왕의 이야기입니다. 왕이 백성을 잃어버리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이제 언약적 관점에서 성경을 간추려 전달하려고 합니다. 언약의 중요성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언약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키입니다.

처음 흙과 생기로 지음 받은 아담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은 최초의 인물입니다. 언약 관계란 대단히 신비로운 관계 설정이라 여겨집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조금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왕과 백성의 관계를 포함하며, 주인과 종의 관계도 성립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지만 양자로 입양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그분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언약을 맺으면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의 백성이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으로 옷 입었고 피조물 중에 가장 존귀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에 아담은 순결하고 깨끗한 그분의 자녀요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굉장히 사랑하셨다는 사실은 말 안 해도 알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굉장히 불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로 인해 아담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잃어버리고 말지요. 완전히 하나님과 끊어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일상적인 만남과 교제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저지른 잘못은 원수 사탄, 영적 사기꾼의 말에 속아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난 행동입니다. 곧 사탄의 지배하에 놓이는 것입니다. 즉시 그는 거룩하지 못한 성질을 갖게 되었어요. 더 이상 그는 순결하고 깨끗한 상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중대한 사건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던 일입니다. 언뜻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영원하신 구속의 목적을 지니셨습니다. 백성을 잃어버리기도 전에, 그들을 향하신 구속 계획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한 뜻으로 품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 부부는 더 이상 에덴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일단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죄와 어둠이 그들 속에 들어왔습니다. 이전엔 다가오지 못했던 흑암의 세력이 우는 사자처럼 그들 가운데 역사했습니다. 이후 아담과 하와 부부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소망을 품고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곧 여자의 후손으로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이가 오시는 때를 말입니다(창 3:15).

그 후로 세월이 흘렀고, 아담의 후손은 땅에 번성하여 많은 민족과 나라를 이뤘습니다. 세상은 흑암의 세력에 넘어가 날마다 악하고 폭력적이고 음란한 일이 자행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첫 사람의 타락과 함께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에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완전한 구속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택하신 인물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나라들은 선택받지 못했는데, 하나님께 선택받은 아브람은 개인에 불과하며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창 12:2~3).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아브람은 한때 시련을 겪으며 마음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떤 준비를 시키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상호 간의 언약을 확증하기 위해, 제물을 둘로 쪼개어 나란히 놓고 그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을 시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며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것을 아브람에게 보이셨습니다(창 15:17).

또 그가 99세 때 더욱 구체적으로 약속을 확인해 주십니다. 그를 아브라함이라 부르시며, 그와 맺은 언약이 대대 후손에게 미칠 영원한 언약이라 말씀하십니다. 현재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며, 그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였던 모습들을 본받으려 노력합니다. 그때 약속된 복이 현재 실현되었고 앞으로 완전히 실현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겨주실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신약 시대의 믿음과 다를 바 없는 메시아(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구별된 삶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렸고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나중에 약속대로 그에게서 이삭이 나왔습니다. 이삭은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을 얻었고, 야곱이 낳은 아들들로부터 열두 지파가 탄생하였습니다.

초기 언약 공동체에 속하기 위한 조건은 단순했습니다. 더러운 우상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육체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물론 자녀와 종들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만약 상기한 조건에 부합한다면, 피가 섞이지 않은 외부인이라도 언약에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창세기의 내용이 끝났습니다. 다음으로 출애굽기를 읽으면, 이집트로 이주한 이스라엘 일가가 어림잡아 2백만에 이를 정도로 크게 번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언약 공동체에 들이기 위해 그의 종 모세를 통해 광야로 불러내십니다. 2백만의 무리는 3개월을 걸어서 미디안의 시내산 앞까지 도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출 19:3~6).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백성들은 거의 한 목소리로 그분의 뜻에 따를 것을 맹세하지요. 모세는 백성을 향해 몸을 성결하게 하라고 일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날이 되자, 시내산 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십계명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 계명은 언약 관계에 들어온 백성이라면 준수해야 할 명령입니다. 설령 어기는 일이 있어도 언약이 깨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회개가 필요하지요. 율법은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 준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간혹 십계명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십계명을 완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짙은 흑암과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백만의 무리가 세워진 광경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모두가 보게 합니다. 또한 준비된 종 한 사람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모세는 백성이 나중에 변질될 것을 우려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여러 차례 경고하며 이후에 오실 분이 있음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외칩니다(신 18:15). 그분은 백성을 바르게 가르치실 것이며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받고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축복하시는 백성이기에 시련이 뒤따랐어요. 이는 불신, 교만, 혈기 등 내면의 뒤틀린 성품, 곧 숨은 죄성을 드러내어 자신의 진면목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에 따른 형벌은 그들을 괴롭게 하였고 결국 죄를 뉘우치게 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그들은 가나안 영토에 정착하여 평안히 밭을 일구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수십년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땅에 살던 민족과 어울리지 말고 그곳의 우상들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이었죠.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에게 이 명령은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시절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출현하면서 우려했던 대로, 그들은 토착 주민의 풍속에 휩쓸려 그들과 통혼하고 거짓 신을 섬겼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이익과 자기만족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지요.

언약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 이스라엘에 외적이 쳐들어왔습니다. 죄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고통 속에서 해방해 주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감격은 잠시뿐, 이들은 또다시 우상 숭배에 몰두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육체의 괴로움이 그들의 간사한 죄성을 해결해 주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의 부재가 낳는 결과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스라엘은 이후에 등장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수백 년의 과오를 바로잡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죄에 빠진 백성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다시금 언약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백성을 지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때 비로소 안전하였고 외세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궁궐을 짓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던 중 성전을 짓고 싶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에게 자기 뜻을 이야기했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이러한 약속을 주셨다(삼하 7:12~16).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말씀에서와 같이 언약은 영원히 보전되는 특징을 가집니다. 사람이 언약을 무시하고 어기는 일은 수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약을 취소하거나 택하신 자를 버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대신 매와 채찍으로 때리십니다. 그리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언약 관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왕기, 역대기에 기록된 언약 백성의 역사는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점점 잘못된 길로 가다가 나중에 징계의 심판을 당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다윗 왕가에는 간혹 훌륭한 왕이 등장하며, 중요한 시기에 선지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습니다.

그중에 호세아 선지자는 고멜이라는 여인를 아내로 삼습니다. 고멜은 남편과 자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동거하는 부정한 여인이었는데,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동거하며 간음을 저지르는 언약 백성을 비유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호세아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아내를 용서하고 정남에게서 되찾아옵니다. 그리고 바알과 행음하는 백성을 향해 회개를 외쳤습니다.

북왕국이 멸망한 후, 남왕국은 바벨론의 압박을 받습니다. 남왕국의 수명이 거의 끝나갈 시기였어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하나님의 새 언약이 도래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렘 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이라고 해서 전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언약이란 어느 시대에 주어지든 기본 틀은 같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이 더 나은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로 인해 언약이 완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면 언약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옛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얼마동안 유용하였지만 임시적인 형태에 불과합니다. 또한 실질적인 죄 사함의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식사를 나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눅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새 언약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 언약이 영원토록 효력있는 언약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이루신 속죄 사역과 흘리신 피로써 가능케 됩니다. 옛 언약에 속했던 백성도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새 언약에 참여합니다.

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2천 년 전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찢기시고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 받는 회개가 선포되었고,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 영원한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눅 24:47; 요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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