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르 주석

마가복음 8

이원범 2024. 3. 2. 18:49

8:1~10 두 사람분 음식으로 천 단위의 인원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이다.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6:30-44)과 같은 범주에 속하지만 몇 가지 상이한 점으로 인해 확연히 구별된다.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을 초월하여 역사한다.

8:2 with me now three days. 야외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음식이 남았을 리 만무하다. 예수님은 양 떼처럼 모인 백성이 굶주려 있음을 아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채워주고 싶으셨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주의 온화하신 성품은 죄로 멸망할 모든 인류가 바라볼 유일한 소망이다(벧전 1:3).

8:4 this desolate place. 출애굽 시 이스라엘도 광야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해결 받았던 것처럼(출 16:35; 시 105:40), 이들에게 배불리 먹고 남을 빵과 생선이 베풀어졌다.

8:10 Dalmanutha. 안타깝게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갈릴리 바다 서부 연안으로 추측된다.

8:11 a sign from heaven.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들은 그동안 봐왔던 기적을 못 믿고 다른 것도 보여봐라 하는 식이다. 따라서 정당한 요구라기보다 불신의 태도에 가깝다.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기가 막힌 일이며 결코 해서는 안 된다(신 6:16).

8:15 leaven. 천국 비유에서 긍정적인 면을 담아내었던 것이 여기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바리새인과 헤롯에 속한 것으로 불리면서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이율배반적 위선으로 꾸지람을 받은 적이 있으며 잘못된 교훈으로 백성을 오도하였다. 헤롯은 세속 정치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말로 교훈하였을 것이다.

8:17, 18 이해 부족이 질책으로 이어진 상황은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하나님 나라의 사명과 관련 있다. 진리가 희귀하고, 헛된 가르침이 만연한 세상에서 사명자가 가져야 할 자세는 말씀을 새겨듣고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4:23).

8:22 Bethsaida. 갈릴리 바다 북부 해안에 위치한 어촌. 빌립, 안드레, 베드로의 고향이다(요 1:44).

8:23~25 첫 시도에서 실패하고 재차 시도하여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좀 이상하게 여겨질 방식으로 일하신다(왕하 5:10). 평소와 다른 모습에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정형화된 틀에 넣고 판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은 병을 단번에 고치실 수 있고 여러 번에 고치거나 반만 고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치유를 우리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8:26 Do not even enter the village.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표적을 두 눈으로 확인할 자격이 없다.

8:27 Caesarea Philippi. 헤르몬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 본래 '파네아스'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헤롯 빌립이 로마 황제의 이름을 기려서 이렇게 명명했다고 전한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인간 왕의 이름을 따온 마을에 머무시는 것이 묘하게 느껴진다.

8:29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 말하든 예수님의 실제 관심은 제자들에게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Christ. 문자적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자 왕이심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8:30 tell no one. 예수께서 선지자보다 높은 명성을 얻은 시점에서 메시아의 소문이 더해지면 그 파급력이 하나님 나라에 큰 도움을 줄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예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며 그렇게 소문내기를 원치 않으신다. 진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선택된 자에게 효용이 있고 나머지에게는 굴러다니는 돌이나 마찬가지다.

8:31 Son of Man. 2:10 해설 참조. elders.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에 속한 평신도 구성원들.

8:32, 33 인간적 관점에서 베드로의 행동은 지극히 타당하며 스승을 위하는 마음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전제하면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탄은 자기가 이룩하려는 목적을 위해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밑밥처럼 이용한다.

8:34~9:1 이전보다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말씀이다. 복음으로 부르신 자들에게 고난을 강조하심은 모순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며, 우리가 더 나은 복에 참여하도록 원하시는 것이다(롬 8:17, 18). 다만 우리의 심성이 본능적으로 고난을 거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내면의 갈등이 초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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