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라

이원범 2020. 2. 23. 11:27

롬 6:13~19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 앞에는 늘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됩니다. 그 결정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한 선택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우리의 운명이 바로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천로역정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성을 향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살던 도시의 주인은 마귀 아볼루온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 순례 여행을 택하여 천성에 들어가고자 한 이유는 살던 도시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어서입니다. 마귀를 섬기며 곧 죄의 종이 되어 살다가는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에요. 죄의 종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크리스천은 장차 있을 멸망을 피해 도시를 떠납니다. 그러나 그의 길을 막는 아볼루온과 결투하게 됩니다. 아볼루온은 소름이 끼치도록 흉측하고 무섭게 생겼습니다. 그 마귀는 과거에 크리스천을 종으로 삼고 있었어요. 그래서 놔주기 싫었던 것이죠. 마귀는 끊임없이 성도들을 공격하며 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천국을 향하는 순례 여행을 하는 한 방해는 계속됩니다.

여러분은 천국을 향해서 가고 있나요?

크리스천이 세상적으로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면 가던 길에서 돌이킬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아볼루온과 싸워야 하니까요. 결국 결투가 벌어지고 말았어요. 창에 찔리고 발톱으로 상하고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피를 흘리면서까지 싸웠습니다. 그래서 이겼어요. 그런데 그를 이기고 나아가도 앞에는 사망의 골짜기가 놓여 있습니다. 정말 험난한 길이예요. 그가 그 길을 포기했다면, 그는 하늘 영광을 얻지 못하고 승리자의 관도 쓰지 못하였겠지요. 크리스천이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그의 주인이 되셨기에 그분을 향하여 천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18절에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성도는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었으니까요. 이전에는 죄에 속박당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새 주인을 만나기 전에는 옛 주인에게 잡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주님을 만나 죄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우리는 옛 주인에게서 벗어나 새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옛 주인은 성격이 아주 포악하고 교활한 자였어요. 주로 시키는 일은 죄짓게 만드는 일이에요. 죄만 짓게 시킵니다.

어둠 속에 갇혀서 불행하게 살던 어느 날, 나를 그곳에서 구원하실 분이 찾아오십니다. 나를 사서 자신의 소유로 삼으실 분이십니다. 나의 새 주인은 인자하고 부드러우며 사랑이 넘칩니다. 그분의 눈에서는 불꽃 같은 사랑이 나를 향해 타오르고 그의 입에서는 물소리 같은 아름다운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 몸값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포악한 옛 주인에게 내미셨습니다. 나를 위해 치르신 값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의 죽으심의 대가로 나를 사셨습니다. 악한 주인이 그것을 받아 든 순간 나는 새 주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만나고 나서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싶은 갈망이 생깁니다. 아름다우신 새 주인을 닮고 싶은 간절한 소원을 품게 됩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그리스도가 주인이신가요? 우리의 새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만 늘 순종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16절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나의 주인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섬기는 새 주인에게가 아닌 옛 주인에게 순종할 때가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순간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분게 순종하지 않고 옛 주인 마귀에게 순종하면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함에도 하기 싫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깨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게으름의 영이나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하고 있지 않다면 마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한 거야'라고 생각할 지라도 벌써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분명히 내 속사람은 기도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악한 영의 방해로 그 의지가 좌절된 것이죠. 내 뜻대로 행동하지 못했으니 그것은 억압이고 지배입니다.

13절을 볼까요.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희를 죄에게 내주지 말아라고 합니다. 성도도 죄를 짓는다는 의미예요. 성도가 불의의 무기가 된다면 그는 자신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학교 전체를 시끄럽게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곳에선 거의 전도가 안 되겠지요. 누구도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하나님의 도시는 폭격을 당한 것입니다. 건물들이 파괴되고 성벽이 무너지고 부서진 것이죠. 공중에선 악한 세력이 아주 좋아합니다. 불의의 무기가 된다는 것은 내 나라를 망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바울도 성도에게 미래에 있을 일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은혜 아래 있을 때 죄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은혜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성결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가 뭘까요? 심심하니까 허전하고 외로우니까 봅니다. 사실 속이 텅 비어 있는 사람은 오락을 즐겨도 즐겁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외롭고 혼자 있으면 우울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어요. 그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요. 세상 문화에 빠지지 않아요. 외롭다는 이유로 친구를 만나지 않아요. 그는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편안합니다. 혼자 골방에 있어도 우울하지 않아요. 그는 은혜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면 못 사는 사람이 있어요. 술이 그의 친구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술과 성령 충만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성령 충만하면 온몸이 성령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요. 빈틈이 없지요. 술이 들어올 만한 곳이 없습니다. 술은 외로워하는 사람이 빈 가슴을 채우기 위해 마시는 거예요.

19절에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우리는 완전히 의로운 상태가 아닙니다. 거룩함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육체를 의의 종으로 내어주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성화는 여기에서 완성이 안 되고 하늘나라에서 완성됩니다. 이곳에선 계속 자라야 하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마귀는 찾아옵니다.

아볼루온은 크리스천에게 "나는 너를 놓칠 수 없다. 돌아오라" 말합니다. 마귀가 여러분에게 돌아오라고 설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주겠다, 나에게 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선택을 내려야 하지요.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을 선택인 거예요.

타락한 본성을 가진 육체는 끊임없이 더러움과 불법을 저지르는 곳으로 향하려 하지만 자신을 그리스도께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분께 굴복하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임하게 할 수 있어요. 죄의 유혹을 이길 힘은 오직 은혜입니다. 그분이 나를 다스리시는 만큼 나는 거룩해집니다.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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