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신학교육의 방향

이원범 2021. 5. 22. 16:01

그동안 한국교회는 힘든 역경 속에 굴하지 않고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유지되고 발전해왔다. 그런데 현재에 이르러선 그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이것은 역경과는 다르게 내부로부터 생명력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마치 나이를 먹어가며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교회들은 어디 할 것 없이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저연령층이 줄어들며 계속 평균 연령이 높아져 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사실 바꿀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든 것이며, 교회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이니 말이다. 세속화의 영향 또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금의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마땅한 대안은 기존 신학교육을 개선하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칼 바르트는 신학이란 교회에 봉사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신학은 교회의 지적 활동이며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합당한 섬김을 통해 영육 간에 복을 받도록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연구의 참여자는 더없이 귀하고 막중한 책임을 지녔다. 교회의 흥망이 이들 어깨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의 현실이 어떠한가? 교회라는 배가 탈 없이 순항하고 있는가? 만약 그들의 성취가 온전하였다면 지금쯤 성도들은 충만한 복을 누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기존 신학교육의 문제점들.

  • 필요 이상의 과한 지식 탐구
  • 잘못된 은사론
  • 성경에 대한 비평적 시각
  • 이론에 치우친 학습과제
  • 실천목회적 전문성의 결여

학생들은 하나님과 성경의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거기서 접하는 것은 딱딱한 이론과 감히 상상도 못했던 불신앙적 관점이다. 그런 건 전혀 바라던 바가 아니며, 교회 사역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하등의 쓸모가 없다. 많은 걸 알아서 남에게 지식 자랑할 게 아니라면 정말 쓸데가 없다.

목회자에게나 성도에게 근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영적 실제다. 신학교육의 목적이 머리를 채우는 것보다 영혼에 유익을 끼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신학교육이 학문 지식을 습득하고 학위 이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긴다면 대단히 잘못된 관점이다. 신학교는 보통의 교육기관과는 다른 목적을 지녀야 한다. 학생을 학자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로 길러내는 것이 신학교의 목적이다.

구약 | 구약서론, 구약신학, 오경, 역사서, 선지서, 시가서
신약 | 신약서론, 성경해석학, 공관복음, 요한문헌, 바울서신, 신약신학
조직 | 구원론, 신학서론, 신론, 기독론, 현대신학, 기독교윤리, 인간론, 종말론, 교회론, 변증학
역사 |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종교개혁사, 한국교회사
실천 | 목회상담학, 교회정치 및 행정, 교회교육, 설교론, 목회학, 교회개척과 복음전도, 예배와 예전, 설교실습
선교 | 선교와 문화, 선교역사, 선교학원론
언어 | 히브리어, 헬라어 

위의 표는 기존 신학대학원에서 대표적으로 이뤄지는 교육 내용들을 표시한 것이다. 여기서 꽤 많은 충돌이 예상되는데 기존 교육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이 많은 과목은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것이 왜 필요한지를 한 번쯤 의심해보길 바란다.

진리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다.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은 많은 배움과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다면 어린아이라도 혹은 믿은 지 겨우 한 달인 초신자라도 깨달을 수 있다. 반대로 신학교에서 이뤄지는 교과 과정을 만점으로 수료했다고 그가 하나님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지는 배움과 영적 실제가 서로 상관관계에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아예 다른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 때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높은 학문적 성취를 얻고도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그런 연유에서다.

한국교회가 영적 실제를 간직하고 본래적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려면, 신학교가 이론·학문중심의 기틀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하나님과 교통함이 있는 일꾼으로 길러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기존에 집어넣은 잡다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줄이고 또 줄이는 작업이 필요한데, 별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학자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신학을 써내느라 바쁠 것이다. 이론에 편중되어 가슴을 차게 식히는 신학 말이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과 성경의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일까? 학문적 업적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영적 실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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