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25장 긴 속박의 세월

이원범 2021. 6. 21. 11:55

  이스라엘 일가가 이집트에 정착한 지 사백여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므로, 칠십 명에 불과하던 그들의 수가 백만이 넘는 큰 민족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족장들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점차 현실로 이루어져 갔다. 너무도 번성한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 내에서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집트 왕은 자국 내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불시에 내란의 소지가 있는 불온 세력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수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도록 대책을 강구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 정책에 따라 가혹한 노역에 시달리게 되었다. 과한 노역으로 기력을 잃으면, 자손 생산도 당연히 줄어들 것이라는 당국의 계산이었다. 이집트인들은 벽돌과 회반죽 만드는 일과 힘든 밭일 등 과중한 노역을 부과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했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억압을 가하면 가할수록 그 수가 더욱더 불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기적은 이집트인들을 두렵게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무서워하기 시작하였다.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여인을 돕는 산파들에게 시켜 그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까지 명령하였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죽이지 않고 모두 살려두었다. 파라오의 분노에 찬 비난보다 하나님 앞에 죄 범하기를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아 제한 정책을 추진했다. 여자 아이는 낳아도 괜찮지만 남자아이는 출산 직후 나일 강에 버려야만 했다. 파라오의 탄압이 더욱 거세지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극심한 고난에 처하였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의 처지를 헤아리셨고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구원자를 예비하기로 작정하셨다.

  어느 날 레위 후손 아므람의 가정에 남자 아기가 태어났다. 딸이면 살리고 아들이면 죽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요게벳은 그 아기에게 특별한 것이 있음을 보고,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겨서 키웠다. 그렇지만 더 이상 숨기는 건 무리였다. 그녀는 갈대로 만든 작은 바구니를 구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발라 물이 새지 않게 하고, 그 속에 아이를 뉘었다. 그녀는 아기의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그것을 나일 강가의 갈대 사이에 띄워 놓았다. 아이의 누이 미리암이 조금 떨어져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나왔다가 갈대 사이에 떠 있는 그 바구니를 보았다.

  “저기 뭐가 있구나.”

  시녀가 바구니를 가져와 공주에게 대령하였다. 그 안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허! 아기였네요, 공주님.”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그때 미리암이 그녀의 앞으로 나셨다.

  “제가 가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올까요?”

  “······그래, 그렇게 하여라.”

  대답을 들은 미리암은 가서 아기의 어머니를 데려왔다.

  “이 아기를 데려가서 내 대신 젖을 먹여 주시오. 그럼 품삯을 드리겠소.”

  그리하여 요게벳은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여 키웠다. 아기가 젖을 뗀 뒤에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았다. 그녀는 그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모세는 왕궁에서 자라며 이집트의 모든 학문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렇지만,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집트의 왕자라는 신분이었음에도 압제당하는 자기 민족을 향한 연민을 느꼈다. 그리하여 모세는 자기 민족의 신원을 담당하고자 하는 뜻을 품게 되었다. 힘과 지혜가 탁월하였던 그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장성한 모세는 자기 민족이 일하는 현장으로 보러 갔는데 그곳에서 어느 이집트인이 이스라엘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 순간, 의분이 치솟은 모세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살피고 그 이집트인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었다. 다음날 그가 다시 그곳에 가 보니, 이스라엘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을 말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가 자신들의 일에 끼어드는 것에 화가 나서 그가 저지른 죄를 들추어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을 줄 알았지만, 그의 범행은 이미 탄로 난 상태였다.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그를 죽이려고 찾았다.

  모세는 시나이 반도를 횡단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피하였다. 그는 정처 없이 먼 길을 헤매고 다녔다. 모세는 낯선 이국에서 방랑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고 계셨다. 그는 홀로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마침 미디안 여인들이 양 떼에 물을 먹이기 위해 그 우물로 다가왔다. 그들은 물을 길어서 아버지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그때 어떤 목자들이 오더니 그 여인들을 내쫓았다. 이를 보다 못해 모세는 다툼에 끼어들어, 여인들을 지켜주고 그들의 양 떼를 먹이는 일까지 도와주었다. 그 여인들은 이드로의 딸들이었다.

  딸들이 일찍 집으로 돌아오니, 이드로가 의아해 했다.

  “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왔느냐?”

  “아버지, 어떤 이집트 사람이 목자들한테서 우리를 구해 주고 물까지 길어 양 떼에게 먹여줬어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식사라도 대접해야지, 왜 그냥 왔느냐? 불러오너라 어서.”

  아버지는 딸들을 꾸중했다. 이후 이드로는 모세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 자기 양 떼를 맡기고 자기 딸 십보라를 주어 사위로 삼았다. 그렇게 모세는 새로운 터전에서 그들과 함께 거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목자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몸이 늙고 기력이 쇠해감에 따라 자기 민족을 위한 신원의 뜻도 기억 저편으로 점차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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