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성하여 북으로 이즈르엘평야와 요단 계곡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중심부를 공략하기 위해 군세를 아벡으로 집결시켰다. 에브라임과 베냐민 주민들은 지역을 방비하기 위해 에벤에셀에 모여들었다. 블레셋 군의 선공으로, 벌판에서 양군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첫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크게 패하여 사천 명 가량이 전사했다.
이스라엘 진영은 적의 기세에 제압되어 걱정과 불안으로 술렁였다.
“이번 싸움은 승산이 없어. 싸워봤자 몰살당할 게 분명해!”
“우린 저들에게 죽게 될 거야, 그냥 돌아가자. 죽더라도 가족들이랑 죽는 게 낫다고!”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패배를 자인하며 서로 수군거렸고 전의를 잃은 병사들의 탈영이 이어졌다. 자멸 위기에 놓인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군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였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를 블레셋 사람에게 패하게 하신 까닭이 무엇이겠소?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이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현재 상황으로선 여호와의 도우심이 절박합니다. 어찌하면 좋겠소?”
“실로에 가서 여호와의 궤를 가져옵시다. 그럼 여호와께서 우리를 적의 손에게 능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료!”
그들은 이렇게 결론이 짓고, 실로로 전갈을 보내어 여호와의 궤를 가져오라 지시하였다. 곧 궤 운반이 진행되었고 그 일에 홉니와 비느하스가 참여하였다. 궤가 진영으로 운반되어 들어오자, 이스라엘 병사들은 땅이 울릴 만큼 크게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스라엘 측의 사기가 드높아지자, 블레셋 진영이 크게 당황하였다.
“저 히브리인들이 왜 저리 함성을 내지르는 거야?”
“이스라엘 진에 그들의 신이 들어갔대!”
“여태껏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잖아?”
“우린 이제 끝장이야! 저들의 신은 광야에서 온갖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바로 그 신이라구! 누가 우리를 그 강력한 신에게서 구원할 수 있겠어?”
소요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자, 블레셋 측 지휘대장 한 사람이 병사들을 사열시키고서 그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용기를 내자! 히브리인들이 우리의 종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가 그들의 종이 되게 생겼다. 우리의 근성을 보여주자! 목숨을 걸고 싸워라!”
블레셋 장병들은 즉시 소요를 그치고 비장한 각오로 전투태세에 임했다. 곧이어 두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여호와의 궤를 앞세우고 나아간 이스라엘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블레셋 앞에서 무수히 죽어나갔다. 결국 이스라엘은 궤를 버려두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이 전투로 인해 이스라엘에서만 삼만 명의 전사자가 나왔고, 여호와의 궤는 적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다. 적들은 민가를 습격해 살인과 약탈, 성폭행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으며, 에브라엠 산지 곳곳의 성읍들을 파괴하고 나서야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실로에 세워진 여호와의 성소도, 그들의 의해 찢기고 불에 타 사라졌다.
전장에서 빠져나온 베냐민 사람이 보기에도 참담한 몰골로 실로에 이르렀다. 그는 거리를 뛰어다니며 이스라엘의 패전 소식을 외쳤고, 주민들은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길가로 나와서 의자에 앉아 있었던 엘리 제사장은 이게 소란인가 궁금하였다.
“어찌 이리 소란스러운가?”
그때 그 베냐민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제사장님! 방금 전쟁터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막 돌아왔습니다.”
“그래 내 아들아, 어떻게 되었느냐?”
“이스라엘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블레셋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제사장님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했고, 여호와의 궤를 빼앗겼습니다.”
‘여호와의 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의자 뒤로 넘어졌다. 노인인 데다 비만이었던 엘리는 목이 부러지면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궤와 지도자를 동시에 잃는 참상을 겪으며 비탄에 잠겼다. 그리고 언제 다시 블레셋이 쳐들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다만 어린 사무엘은 그러한 상황 가운데 동요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여호와께로부터, 블레셋이 징벌을 당할 것과 그들이 자발적으로 궤를 돌려보낼 것이라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실 일들에 대해 예언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블레셋에 큰 이변이 일어났다.
블레셋 인들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었던 탓에, 여호와의 궤를 가증한 우상과 나란히 놓는 우를 범하였다. 그들의 행위에 진노하신 여호와는 아스돗에 악성 전염병을 내리셨다. 감염자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성읍 주민 대다수가 목숨을 잃거나 종양이 생겼다. 전염병은 아스돗으로 그치지 않고 블레셋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궤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늘어만 갔고, 온 성읍이 내지르는 고통과 비탄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 견디다 못한 블레셋 인들은 결국 궤를 수레에 싣고 이스라엘 땅 벳세메스로 돌려보냈다. 절망과 두려움 가운데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에 내린 재앙과 돌아온 궤로 인하여 위로를 얻었다.
사무엘은 자라 가면서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이행하게 되었다. 그는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그의 예언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졌고, 백성들은 그가 여호와의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영적 무지에서 놓여났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한 경외심을 회복해 나가는 사이, 사무엘은 거룩한 성회를 열어 금식을 선포하고 민족적 회개를 이끌었다. 이스라엘은 우상들을 타파하고 여호와께로 마음을 쏟으며 관계 회복을 이뤘다. 그렇게 사십여 년 간 사무엘이 민족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므로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빼앗았던 모든 성읍을 되찾고, 그 땅에 평화가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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