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내러티브

70장 밀약

이원범 2021. 6. 24. 13:43

  다윗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때가 가까이 이른 것을 알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애도하기를 마치고 가족과 추종세력을 이끌고 유다 헤브론에 정착하였는데, 유다 주민들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의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은 길르앗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하고 길르앗, 아셀, 이스르엘, 에브라임, 베냐민 등 남아있는 지파들을 규합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운 유다와 사울의 집안을 따르는 지파들의 연합인 동이스라엘로 양분되어 버렸다. 두 체제 사이의 세력 다툼은 이 년간 이어졌다. 이러한 시국에 유다는 점점 강해졌고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대세의 흐름이 다윗 쪽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헤브론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다윗에게 아브넬이 보낸 사자가 도착하였다. 그는 다윗 앞에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췄다.

  “알현을 허락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다윗님의 얼굴을 뵈오니 참으로 영광이옵니다.”

  “나도 반갑소만, 무슨 용건으로 왔소?”

  “예, 저의 주인 아브넬님을 대신해서 전해드릴 말씀을 가지고 왔습니다. 외람되지만 주위의 사람들을 물려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다윗은 신하들에게 눈짓하여 밖으로 내보냈다. 아브넬의 사자는 다윗과 독대하게 되자 말을 꺼냈다.

  “저희 주인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다윗 님에게 돌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다윗 님의 심기를 거스른 잘못도 반성하고 계시지요. 이 나라가 누구의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기름부으신 다윗 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만약 저희 주인께 다윗 님을 최일선에서 섬길 수 있는 직위를 보장해 주신다면, 저희 주님께서는 적극 다윗 님의 편이 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다윗 님에게 돌리도록 힘을 다할 것입니다.”

  다윗은 매우 흡족하여 소탈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동족의 피를 흘리지 않고 이스라엘을 통합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참 고마운 말씀이오. 당연히 승낙해야 하지 않겠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나를 만나러 올 때, 사울의 딸 미갈을 데려오라 전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외다.”

  “예, 저희 주인께 그대로 전해 올리겠습니다.” 잠시 시간을 끌던 그는 말을 이었다. “소인이 왕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오.”

  “다윗 님께서는 블레셋의 명장 골리앗을 쳐죽이고 선대 왕 사울님의 사위가 될 자격을 얻으셨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둘째 따님이신 미갈 님을 얻기 위해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결혼 지참금으로 지불하셨지요. 이로써 미갈 공주님은 다윗 님의 합법적인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는 다윗님의 매제이신 이스보셋님께 바로 진언하시는 편이 훨씬 수월하리라 사료되옵니다.”

  “잘 알겠네, 나도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해봤군 그려.”

  다윗은 다시 소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를 돌려보냈고, 이어서 이스보셋에게 전령을 보내어 헤어진 아내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스보셋은 다윗의 요구대로 미갈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당시 새 남편과 재혼해서 살고 있었던 미갈은 다시 한번 남편과의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그동안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만나서 다윗 편에 들도록 그들을 회유하고 베냐민 지파를 따로 불러 긴밀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울 왕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 나갔다. 이미 대다수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별로 없었다. 그는 다윗에게 전갈을 보내어 방문 의사를 밝히고, 약속한 기일이 되어 그의 수하 스무 명과 함께 헤브론 성을 찾아왔다.

  다윗은 관청에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어서 오시오.”

  아브넬이 맨 앞으로 나와 다윗 앞에서 무릎 꿇으니, 수하들 일동이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저 아브넬과 저의 수하들 스무 명이 다윗 왕을 뵙습니다.”

  “그래그래. 참 잘 오셨소이다.”

  다윗은 기뻐서 연신 웃음을 지었다.

  “아브넬, 당신이 나와 뜻을 같이 해준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소. 곧 음식을 내올 것이니,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있으시오.”

  아브넬은 자신에게 비난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를 대하듯이 반갑게 맞아주는 다윗에게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두 사람은 연회석상에서 다양한 논의를 주고받으며 대담하였고, 유다와 동이스라엘의 통합을 위한 최종 합의를 도출해냈다.

  연회가 끝나고 나서 아브넬이 말했다.

  “전하, 옛 일을 떠올리면 부끄러워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지난날의 일로 저를 미워하실 텐데 전혀 화를 내지 않으시니 그래서 더 마음이 찔립니다.”

  “다 지난 일이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을 미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저 왕의 명령에 충실했던 것이며 사울 왕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행한 일 아닙니까 저는 그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저를 사로잡고 주군을 적대시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실수투성에 불과하지요. 주의 긍휼하심이 아니면 우리는 모두 죽어야만 합니다. 저 또한 주 앞에 서면 심히 죄인이며 부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늘 여호와를 묵상하며 죄로부터 자신을 멀리해야만 합니다. 당신도 주 앞에서 죄 없이함을 받는 은총이 임하길 여호와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주군의 넓은 도량에 감격할 따름입니다. 이제 주군을 위해 충성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내 주인이신 왕을 위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모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들이 왕과 조약을 맺고, 왕의 뜻대로 다스릴 권한을 왕께 드릴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고 하는 일에 축복 주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그를 축복하며,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였다. 아브넬은 다윗의 배웅을 받으며 연회 장소를 나왔다. 이스라엘 장로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굳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혼자 말 위에 올라타, 천천히 북쪽 지역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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