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성경 강좌

사사기 서론

이원범 2021. 12. 8. 11:47

가나안에 정착한 후 이스라엘이 직면한 문제는 다름 아닌 영적 타락입니다. 거듭해서 주의하라고 당부하시며 그들이 원하던 땅과 부귀를 주셨음에도 말입니다. 선대부터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가졌어도 가나안의 향락적 문화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여타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정착 1세대는 광야에서 오랜 연단을 거쳤고 전쟁을 직접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직접 목도했고 온건한 믿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했고 숱하게 그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TV나 오락이 없었던 시절이니 재미없다고 안 듣는 일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희 부모 세대만 해도 거의 6·25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이지만 그때 일어난 이야기들을 많이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다릅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2세들은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알 뿐, 실제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은 급속히 이방 문화에 젖어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신앙이 없었던 탓에 율법을 놓고 갈등할 틈도 없었습니다. 마치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듯, 그들은 가나안 풍속에 녹아들었습니다. 그렇게 사사 시대는 타락과 배교가 만연한 영적 혼란기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사기는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지파별로 나누어진 이스라엘이라,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사사기에서 하나님께서 훈련하시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범죄한 무리를 이방 민족의 침입으로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역한 이스라엘은 약해졌고 그로 인해 이방인의 폭거에 시달렸습니다. 극심한 고통에 직면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보내셨으니"

그들은 단순히 살려달라고 애원했을까요?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그들은 레위기 규례에 따른 희생 제사를 드렸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물에 손을 얹고 죄를 고하며 그것을 잡아 번제단에서 태워 드렸을 것입니다. 약속대로 죄를 사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시는 일에는 회개가 들어가야 합니다.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아무런 유익도 얻을 수 없습니다. 단지 살려달라는 애원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그로 인해 징계당하며 고통 속에 회개하고 마침내 구원이 임함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죄의 고리가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평안할 땐 제 맘대로 살고, 고통스러워야 하나님을 찾는 간교한 본성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반복되는 역사는 보는 이로 답답함을 느끼게 하면서 한편으로 우리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합니다. 만약 이 이야기 속에서 어느 순간 구원이 그친다면 시원한 사이다는커녕 끔찍한 두려움이 엄습할 것입니다. 인간이 죄인인 것과 한번 용서받고도 다시 죄에 빠짐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붙들어야 할 진리는 우리와 맺은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와중에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지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죄를 반복해서 짓더라도 언약의 백성인 이상 지옥에 갈 일 없다는 생각은 무척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죄를 반복하는 행위가 회개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했어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죄의 고리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민족적 차원에서 지위를 잃지 않은 것과 개인의 처우는 다른 개념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어도 그중에 어떤 자들은 멸망했습니다. 의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설령 모세의 직계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사기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면서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거울처럼 우리 자신을 비춰보게 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에 만족하지 말고 깊은 성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회개하면서 고쳐나가고, 늘 자신을 관조하는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죄에 무감각한 삶이 곧 사사기에서 되풀이되던 역사임을 인식하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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