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성경 강좌

사무엘상 서론

이원범 2021. 12. 11. 22:09

사무엘상은 사사 통치 체제로부터 왕이 통치하는 왕정 체제로의 전환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사는 임시로 맡은 군대 지휘관과 비슷했습니다. 통합된 이스라엘이 아닌 지파 내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자는 아닙니다. 그 자리는 그동안 공석이었습니다.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는데 백성이 따르지 않는 바람에 마치 공석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체제의 전환이라고 해서 발전을 생각하면 틀립니다. 오히려 후퇴에 가깝지요. 사람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한들 하나님을 모시는 것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쟁이 없습니다. 여당·야당이 없고, 부패한 관리가 없습니다. 의의 기준인 율법이 있고, 정의로운 재판장이 계십니다. 악이 창궐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억울한 일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흠잡을 데가 없는 이상적인 국가입니다. 고칠 부분이 없습니다. 불만이 생겨날 일이 없습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선진적인 정치 체계를 가졌으나 국민의 수준이 선진적이지 못했습니다. 컴퓨터가 최고 성능이라도 다룰 줄을 모른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가치를 알지 못하고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혼돈에 빠진 백성들은 수준이 좀 낮더라도 보편적인 형태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셨는데 그가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본래 아기를 배지 못하던 한나가 하나님께 서원하여 얻은 아들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뜻하는 '나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그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전한 말이 전부 응하였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자 민족의 지도자로서, 정치·사회적 무질서를 극복하고 이스라엘을 혼돈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기초가 무너진 백성을 가르쳐 신정 체제를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습니다.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나라가 복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사무엘이 살아있어야 했습니다. 노쇠한 사무엘이 일선에서 물러나자, 백성이 동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란 불안감이 싹텄습니다.

이후부터 우리가 아는 왕정 시대로 접어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계기가 불안이었다는 점이 출발부터 좋지 않은 느낌이 들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왜 불안을 느껴야 할까요? 아니, 이유가 중요하지 않고 불안 자체가 옳지 않습니다. 불안은 곧 불신앙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선조들이 느꼈던 감정이 그것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인간은 하나 바뀌지 않습니다. 사실 앞을 보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소유하였음에도 말입니다. 마음에서는 이미 줄다리기 게임이 한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사람들의 소원대로 왕을 세우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원하니까 허락하지만 기뻐하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함은 모든 사람이 그의 행동으로 망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왕정 체제의 유익을 그들은 인정하였으나 폐해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서에는 두 명의 기름부음 받은 왕이 등장합니다. 사울은 초기에는 잘하는 것 같았는데 인정받기 시작하니 금세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겸손해 보였는데 본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 왕이 끼칠 나쁜 영향을 예시로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듭 어기다가 결국 버림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평범한 나라였으면 이보다는 낫게 평가받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시다 보니 평가가 절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은 교만하기 때문에 권력욕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빠져서 그것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 이것이 무척 위험한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그 집착과 분노를, 택하신 종 다윗을 연단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괘씸한 결정을 내렸어도, 그들이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갈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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