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이끌려면 그만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주변 나라보다 국력이 턱없이 낮아서도 안 됩니다. 이 두 가지와 더불어 선민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는 사울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울뿐 아니라 그의 아들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까지 죽는 바람에 이스라엘은 거의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악령에 시달려 괴팍하게 변했어도 그간 쌓은 업적이며 오랜 정신적 지주였다는 점에서 받은 충격은 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나라는 보통 나라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뜻이 무시되어선 안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쫓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과 틀어졌고 은총을 입지 못했습니다. 나라 전반의 일을 지도력과 국력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계가 온 것이 길보아 전투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순전히 군대의 힘으로 우열을 가렸고 블레셋이 이겼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날의 전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의 마지막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다른 점은 다름 아닌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느냐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이 부분은 두 사람만 비교 대상으로 삼기보다 나를 포함해야 유익이 있습니다. 누군가 잘하고 누구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지 나는 또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은 주권자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았고 선을 넘지 않으려고 자기 의지를 단속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은 가장 높은 권세이기 때문에 자기 의지대로 하기 쉽습니다. 다윗이 이 점을 간과했다면 사울이 죽은 후 바로 이스라엘 전역을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왕위를 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힘이 강하면 주변국을 정복하여 세력을 확장합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나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허락하시면 나가서 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것으로 선대에 정해주셨지만 이민족이 차지한 땅을 싸워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이며 승리하는 싸움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러한 나라임을 만방에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전례 없는 기세를 떨쳤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손꼽힙니다. 왜냐하면 장차 도래할 메시아 왕국을 예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예표가 되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소망하며 꿈꾸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했고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굶지 않고 궁핍하지 않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슬픔이 없고 고통이 없습니다.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나눌 부분은, 이때도 역시 죄악이 있었습니다. 안정과 평화가 우리가 바라는 것일진대, 인간은 거기서 더 나아가 쾌락과 탐욕을 추구합니다. 책에는 왕실에서 벌어진 사건만을 거의 다룹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인구 조사 이면에 여호와의 진노를 일으킬 민족적 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지은 죄가 다윗 시대에 보응으로 임하기도 했습니다. 복을 받더라도 보응은 보응대로 임합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