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 대개 남성 위주로 기록된 데에 반해 룻기와 에스더는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본서는 에스라 6장과 7장 사이에 있었던 일로 추측됩니다. 그러니까 1차 귀환이 이뤄졌고 스룹바벨을 위시한 귀환민들이 성전을 완공한 때입니다. 당시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약 200만 명으로, 이야기의 배경인 수산과 제국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그곳에 생활 기반을 형성하여 돌아가기가 여의찮았던 것 같습니다.
본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나 역사하심에 대한 해석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르고 읽다가는 전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소설과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 논란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포함할 가치가 있는지에 관해서 말입니다. 어떤 이는 이 책을 두고 우리에게 전수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깊이 스며 있습니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과하게 말입니다. 만약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빠졌는데 완벽한 하모니로 관객을 감동하게 했다면 누가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연이 과하면 우연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작정하고 실행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접근하면 유대인이 하만의 계략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상황은 반대로 흘러갑니다. 우연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본문에는 이러한 일이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왕들 사이에는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고레스'라는 이름도 찾아볼 수 없는데 그것은 외래어 표기법의 문제이고, 이 왕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정황을 고려해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크세르크세스 1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스 정벌을 계획 중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된 지 삼 년째 되는 해에 잔치를 벌인 것은 전쟁 준비 과정으로 일종의 전략 회의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 부와 위상을 한껏 과시함으로써 소수의 반대나 우려 섞인 목소리를 차단하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책에 관한 논란 중 하나로 사랑의 정신보다는 복수심이 강조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만에 의해 민족 전체가 멸절의 위기에 빠졌다고 하나, 그것을 명분으로 7만 5천의 생명을 빼앗은 일은 좀 심하다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걸로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성경에는 곳곳에 아무 생각 없이 가져와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우상을 미워하신다고 실제로 절에 들어가서 우상을 부순 사람이 있었습니다. 초파일에 불교 행사를 하면 단체로 와서 찬송가를 크게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사람의 손을 빌려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마치 보복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보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셨다면 심판입니다. 반대로 개인적인 원한으로 상대에게 되갚음을 해준다면 보복이며 복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의 도구로 삼지 않으셨는데 내가 나선다면 당연히 복수이고 잘못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보복하신다는 의미로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룻기 에스더」, 국제제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