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의 사람입니다. 웃시야가 죽을 무렵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서 이후로 40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그는 귀족 가문에 속한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으며 최고의 학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확실하지 않지만 웃시야 왕의 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활동 시기는 정치적으로 변화가 거듭되던 때였습니다. 윗지방에서 세를 넓힌 앗수르와 남쪽의 애굽은 유다가 범접할 수 없는 강자였습니다. 두 힘 사이에 낀 유다는 작은 기류에도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듯 격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며, 대외 정책에 따라 나라가 뒤집힐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고위 학자이자 선지자로서 이사야는 왕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유다는 작고 국력이 약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우하시면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했던 아하스는 그 말을 무시하고 현실적 수단을 택했습니다. 앗수르에 빌붙어 생존을 도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죽으나 사나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뢰가 사라진 사이는 관계가 끝난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는 패망의 길로 향하는 유다 왕국을 바라보며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백성의 개인적인 죄악뿐 아니라 공의를 팽개친 사회의 여러 범죄를 지적했습니다. 닥쳐온 환난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는 그들의 죄악 때문임을 역설했습니다. 이는 선지자가 전한 말이 아니어도 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그것이 모세오경의 가르침이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나열한 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른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악독한 것이 많았습니다.
죄에 따른 심판을 선언한 것 외에 본서에는 메시아에 관한 다양한 예언들이 담겼습니다. 다른 책들보다 월등히 많은 내용이 말입니다. 전부 나열하기는 어려워서 이 정도만 넣었습니다.
출생 | 7:14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
11:1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
기름부음 | 61:1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 |||||||
왕 | 9:6 |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 |||||||
9:7 |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 ||||||||
11:10 |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
32:1 |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 ||||||||
사람들 | 29:13 |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 |||||||
35:5 |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 ||||||||
40:11 |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 ||||||||
42:3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 ||||||||
61:1 |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
빛 | 42:6 |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
수난 | 49:7 |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 |||||||
53:5 |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 ||||||||
53:6 |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
53:12 |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
이사야가 예시하는 메시아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하나는 전능하고 공의로운 왕의 이미지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큰 고난에 처하는 종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들에게 후자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만이 다윗과 같은 위세로 대적들을 무찌르고 세상을 다스리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초라한 메시아는 초라한 자신들의 처지에서 희망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생각이 메시아가 여럿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메시아로 오신 분임을 믿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님께 정확히 부합합니다. 그분의 이미지가 복합적인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왕은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도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유독 유대인들은 다른 기대보다 독립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들음에 있어 우리는 사심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이루시길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 노우호, 「읽는 것을 깨닫느뇨?」, 에스라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