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예레미야가 자국의 민족적 비극을 애달피 노래한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은 독기가 바짝 오른 바벨론 군대에 의해 무너지고 철저히 유린당했습니다. 저자는 파괴의 재앙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그 참상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건물이 있던 자리는 잔햇더미와 재가 남았고, 시체와 우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전쟁의 참상이 다 끔찍한 것인데 예루살렘의 상흔은 더욱 심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될 것을 알았고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니 참담함이 더했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이같이 잔악한 일을 벌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애초에 느부갓네살 왕은 시드기야에게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이미 승패가 정해진 마당에 더 이상의 항쟁은 서로에게 힘 빠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듣지 않았고, 그렇게 일 년 반을 버티다 붙잡혔습니다. 얼마나 분이 났겠습니까. 전쟁은 막대한 돈을 잡아먹습니다. 일 년 반을 소모했으니 득보다 실이 클지도 모릅니다. 병사들의 입장에선 집과 가족이 있는 사람이 얼른 돌아가지 못하고 재미도 없는 곳에서 야전 생활을 일 년 반이나 한 것입니다. 며칠만 나가서 지내도 힘든데 지루하고 불편한 나날을 그렇게 견디며 얼마나 독기가 가득했겠습니까.
시드기야가 일찍 항복했다면 이렇게까지 성이 불타고 백성의 처우도 이렇게까지 비참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지독한 참상을 겪을 데에는 끝까지 고집을 부린 위정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없습니다. 설령 위정자들로 인한 고난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보응입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버리시고 그들을 향한 은혜를 거두신 것에 대한 심리적, 영적 고통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불신하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슬픔 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말합니다.
한편으로 예루살렘의 수난은 모세가 설교한 신명기 28장의 저주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치 신명기를 인용한 듯한 비슷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
이렇게 보면 모세는 수백 년 후의 일을 미리 예견하고 주의를 당부한 것 같습니다. 고통당한 백성들은 선조들이 모세에게 들었던 축복과 저주 가운데 하필이면 저주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반대로 소망을 갖게 합니다. 저주를 크게 당했으니 다음번에는 잘해서 축복을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바라시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저주 가운데 고통받은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 조병호, 「성경과 5대 제국」, 통독원
- 하용조 편찬, 「비전성경사전」, 두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