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성경 강좌

요나 서론

이원범 2022. 1. 31. 18:15

요나는 아모스, 호세아와 같은 여로보암 2세 때의 사람입니다. 본서에서는 선지자이면서 하나님께 반항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등 무척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선지자들보다 부족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 사람의 일부만 보여줄 뿐 전체를 담지 못합니다. 기록에 없더라도 어떤 흠결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나중에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할 때 기록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실수와 철없는 행동을 고스란히 적었습니다. 이는 자기 위신을 내려놓을 만큼 인격적으로 성장하였다는 증거입니다.

본서의 배경이 되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은 앗수르 제국이 일시적으로 약해졌던 시기입니다. 반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국력이 성장하였습니다. 주변국 입장에서 앗수르는 거대한 힘을 가진 악당이었기 때문에, 경사가 났다고 환호하는 나라가 많았을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만 하더라도 원수 같은 앗수르가 이대로 망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소원과 달리 완전한 멸망까지 유예가 남아 있었습니다.

분명 더럽고 흉포한 자들인 것은 확실하지만 바로 멸망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악인들에 대해 우리는 욕 한 사발을 퍼붓고 저주하길 마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자들이 득세하는지, 하나님께서 정말 공의로우신지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악인들이 살아있는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늦추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입장을 가진 우리는 친밀감이나 유대를 형성하지 않은 관계에서 냉정합니다. 어떤 연줄로 묶이지 않은 상대에 대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가집니다. 엄청난 재해가 일어나도 우리나라만 아니면 괜찮다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그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었다면 순종했을 것입니다. 그에게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주의입니다. 나중에 극복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만 해도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었습니다.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위하는 점에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 민족의 우수성으로 기울면 우월주의가 생겨납니다. 이방인을 배척한 유대인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사실 어느 곳에나 우월주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주의로 말미암은 편협한 시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월의식을 느낀다든지 차별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가 선지자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그것은 걸림돌로 작용하였습니다. 니느웨 사람을 구원 밖의 존재 혹은 원수로 삼은 결과입니다.

본서에는 대단한 반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엘리야, 엘리사를 보내어 큰 이적을 보여주셨고 아모스, 호세아를 통해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니느웨는 요나의 하루 외침으로 회개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데, 천하다고 여긴 이방인들은 하루 만에 회개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어린아이들을 언급하시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누구고 얼마나 잘났는지에 대한 생각은 정말 부끄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낮아지고 겸손하지 않으면 편협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만을 깨뜨려야 합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 노우호, 「읽는 것을 깨닫느뇨?」, 에스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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